맹물생각 94

내 마음을 묻다, AI에게

TV 없이 산 세월이 30년은 되는 것 같다. 고등학생부터 자취를 했고, 대학생 때도 기숙사, 아님 자취생활, 그 후로도 부모님 집을 떠나 살았다. 혼자 사는 집에는 TV를 들이지 않았다. 어쩌다 친구집에 가서 TV를 보게 되면 친구보다 TV드라마에 빠져 대화가 안 될 지경이다. 정작 친구는 습관적으로 켜놓았을 뿐인데 나는 쉽게 빠져든다. 그렇게 몇 시간 보내고 나면 허탈하기 이루 말할 데 없다. 그런 경험 때문인지 의도적으로 TV를 멀리하다 보니 이제 없는 것이 당연하게 느껴진다. 결혼을 해서도 TV는 있지만 인터넷 연결을 해서 다큐나 영화를 보는 용도다. 얼마 전부터 딸램과 '우영우'를 보기 시작했다. 한창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을 때는 별 관심이 없었다. 딸램이 친구들한테 듣고 와서 그렇게 재밌다고 ..

맹물생각 2024.10.28

잃어버린 물건은 찾지 않아야 찾는다

분명히 집 안 어딘가에 두었는데 못 찾겠다. 양조간장을 하나 여분으로 쟁여뒀는데 어디다 둔 건지 당체 보이지 않는다. 간장만이 아니다. 다양한 물건들을 찾아 헤맨다. 최근, 밀가루 반죽을 미는 봉, 의료용 반창고, 스템플러 등등. 찾아 헤매는 시점이 당장 필요한 때라 더 답답하다. 이런 경험이 한두 번이 아니다 보니 나름 요령을 터득했다. 일단은 물건마다 각자의 자리를 정하고 사용 후 바로바로 챙겨 넣는 것이다. 그런데 이사를 하면서 미처 자리를 잡지 못한 물건도 있고, 자리를 잡았으나 그 자리가 어딘지 헛갈리는 경우도 있다. 대략 난감이다. 기필코 당장 찾고야 말겠다고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보자'는 심정으로 덤비면 여러 모로 손해다. 일단 이 물건들은 찾을수록 더 꽁꽁 숨는 경향을 보인다. 나한테..

맹물생각 2024.10.25

저속노화 부작용

최근 을 읽고 바로 실천에 옮겨 보기로 했다. 우선 매일 빠지지 않고 먹는 밥부터 바꿔보자. 밥만 먹어도 영양이 치우치지 않도록 골고루 섞자. 한 번도 먹어보지 않은 렌틸콩을 주문했다. 집에는 귀리와 현미가 있다. 아침마다 콩물을 마시고 있으니 굳이 다른 콩은 더 추가하지 않기로 했다. 평소에도 귀리를 섞어 밥을 짓긴했지만 그 비중이 적었던 것같아 과감한 변화를 주기로 했다. 어제 점심, 저녁으로 먹을 쌀을 씻으면서 백미, 렌틸콩, 귀리, 현미를 4:2:2:2로 했다. 늘 흰쌀밥을 먹고싶다는 가장의 목소리가 귀에 쟁쟁했지만 무시했다. 타박하는 목소리를 미리 잠재워야겠기에 책 속 아래 문구를 사진 찍어서 카톡을 날렸다. "매일 흰쌀밥을 먹는 것은 가속노화 쪽으로 풀 엑셀을 밟는 것과 비슷하다." 흰쌀밥은 ..

맹물생각 2024.10.24

음식은 손맛이 아니라 기분 맛

우리 집에서 통도사까지는 20분 거리다. 주변에 산 좋고, 물 좋고, 공기 좋은 곳이 지천으로 늘려있는데 온종일 집에만 머물기는 아깝다. 왠지 손해 보는 느낌마저 든다. 나보다는 가장이 더 그런 것 같다. 아침에 퇴근하는 가장이 집에 들어서자마자 얘기한다. "통도사 근처에 충무김밥 맛집이 있다는 데 갈까?" 오늘은 또 점심을 뭘 먹나 고민이었는데 반가운 제안에 '콜!'을 외친다. 가장은 암막을 치고 두어 시간 자고, 나는 공부방에서 아이들 문제집 채점도 하고 책도 좀 읽고 나니 금세 점심시간이 된다. 가장이 야간근무를 하고 온 날은 언제나 운전은 내 몫이다. 이런 날은 사소한 일에도 예민하고, 사람 좋기로 소문난 그지만 피로 앞에서는 맥을 못 춘다. 길치인 나는 웬만한 길은 대부분 내비를 찍고 출발한다...

맹물생각 2024.10.22

자기 인정

딸램은 학교로 가장은 직장으로 출근하고 설거지, 빨래, 집안 정리도 대충 끝냈다. 여유롭게 커피도 내리고, 책상에 앉아 독서대에 책을 펼쳤다. 서너 걸음 떨어진 곳에는 폰을 충전하고 있다. 한창 책에 몰입이 되려는 찰나 폰의 진동음이 심상찮다. '055'로 시작하는 낯선 번호. 누구지? "여보세요?" "양*중학교 보건실입니다. 채* 어머니시죠?" "네!" "어머니 많이 놀랄 일은 아니고요, 문자 메시지로 사진 한 장 보냈는데 봐주시겠어요?" 가슴을 졸이며 메시지를 여니, 눈 밑 광대뼈 언저리에 피멍이든 딸램이 울상이 되어있다. 체육시간에 친구의 배드민턴 라켓에 맞아서 다쳤다고 한다. 문진을 해본 결과 큰 문제는 없어 보이지만 혹시 모르니 X-ray 촬영을 해보는 게 좋겠단다. 급히 주섬주섬 챙겨서 아이가..

맹물생각 2024.10.16

또 하루가 저문다

어제 이 시간, 이 자리 식탁 테이블에 앉아 글감이 없다며 머리를 쥐어짰다. 그런데 벌써 24시간이 지나 같은 고민으로 앉아있다. 오늘은 글감이 없는 것보다 벌써 만 하루가 지났다는 사실이 섬뜩하게 와닿는다. 40대는 시속 40km, 50대는 시속 50km, 60는 시속 60km, 70대는 70, 80대는 80으로 세월이 간다고 했던가. 정말 금방 2024년도 지나고 25년이 올 것 같다. 아직 2024년이라는 숫자에 익숙해지지도 못한 맘인데. 남편도 나도 친구들보다 10년은 늦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 아들의 늦둥이라 할만한 손녀를 돌봐주시는 어머님도 보통의 할머니들보다 10년은 더 나이가 드셨다. 그럼에도 정말 지극정성으로 손녀를 돌봐주셨다. 몸이 가볍고, 걸음걸이가 빠른 어머님을 보며 이웃 사..

맹물생각 2024.10.15

방심은 금물

방바닥이 아니 침대 패드가 시뻘겋다. 심하게 격투라도 벌였나? 은수저 금수저 서로 갖겠다고 치고받고 했더니 금세 용왕님이 나타나 물거품으로 만들어버린 개꿈 탓. 뭔 말인고? 오늘도 딱히 떠오르는 글감이 없어 머리를 싸매고 있다. 옆에 앉아 있던 딸램이 말한다. "엄마, 생각이 안 나면 짧게 시를 써." "야! 시는 어디 쉽냐? 함축적으로 쓰는 시가 에세이 보다 더 어렵지." "그러면 삼행시 어때? 오늘 아침 사건으로 N행시를 쓰는 거지. 봉전암 다녀왔을 때 내가 썼던 것처럼." 아하. 올봄 시부모님과 우리 세 식구 함께 아버님의 소원풀이를 위해 설악산 봉정암을 다녀왔다. 그때 비는 쏟아지고 얼마나 고생을 했든지 다녀온 후기를 써라니, 딸램이 '이제 다신 안 간다!'라는 칠 행시를 기가 막히게 써 내려갔던..

맹물생각 2024.10.14

인생 첫 쓴 맛

오늘 글을 올리지 못해 급한 마음에 컴퓨터 앞에 앉았다. 어느새 방으로 따라 들어온 딸램. "엄마, 오늘 수학 수행평가 성적 나왔는데... J는 95점 받아서 100점이 되고, 나는 94점 받아서 95점이 됐어. 85점부터 94점까지는 95점이래." 그리고는 울먹울먹 하더니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린다. 슬프단다. 드디어 시작이구나. 내 아이도 이제 인생에 쓴 맛이 있다는 걸 겪을 때가 되었구나. 마냥 즐겁고 행복했던 딸램이었는데. 씁쓸함과 함께 어떤 말이 아이에게 위로가 되고 도움이 될지 순간 머릿속이 아득하다. 이야기 끝에 친하게 지내는 다른 친구들 세 명의 점수가 95, 96, 98점이란다. 참 슬플 만도 하겠고, 기분이 다운될 만도 하겠다. 그것도 명색이 엄마가 수학선생이라는데. 나 역시도 ..

맹물생각 2024.10.10

글쓰기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요즘같이 글쓰기가 많이 필요한 시대도 없었던 것 같다. 국민학교 때부터 일기나 독후감 쓰기를 숙제로 받을 때마다 적지 않은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때는 '글쓰기'라고도 하지 않고 '글짓기'라고 했다. '글짓기'라는 말부터가 부담이다. 왠지 자연스러움보다는 뭔가 억지로 아름답게 지어내어야 할 것 같은 압박감 때문이었을까? 그래서인지 글짓기는 숙제할 때만 필요한 것인 줄 알았다. 사실 50대인 내가 초. 중. 고등학생 때는 그 외에 글을 쓸 일이 별로 없기도 했다. 그런데 요즘은 어떤가? 친구들과 가벼운 메시지나 카톡을 주고받는 것부터 주문한 물건이 제 때 배송되지 않을 때, 제품에 하자가 있을 때, 반품처리가 제대로 되지 않을 때 등 매사에 나의 의사 표현을 온라인에 메시지로 남기게 된다. 온라인으로 선물을..

맹물생각 2024.10.07

연예인 걱정은 하는 게 아니다.

가족들과 때로는 독서모임 멤버들과 한 적한 시골로 드라이브를 하다 보면 곧잘 눈에 띄는 것이 있다. 대형 베이커리 카페들. 제법 경치가 좋은 곳이다 싶으면 의례히 근사한 카페가 턱 하니 버티고 있다. 일부러 목적지를 소문난 카페로 정하고 출발하는 경우도 많다. 주말에는 북적북적 밀려드는 사람들로 시끌벅적 자리가 모자랄 때도 허다하다. 그러나 평일에는 사정이 다르다. 그 큰 카페에 우리 부부만 있을 때도 있고, 드문드문 앉은자리보다 빈자리가 훨씬 많을 때 우리 부부가 나눈 대화에는 이런 말들이 많다. "이렇게 장사하면 적자가 아닐까?" "이 넓은 땅은 자기 것이라 하더라도, 건축비, 인테리어, 인건비, 유지관리비 만만찮을 텐데 커피 몇잔을 팔아야 될까?" "이런 돈으로 다른 방식으로 투자하면 훨 낫지 않을..

맹물생각 2024.1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