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20

비 내리는 내원사

어제 온종일 비와 바람이 기성을 부리더니 다행히 새벽 시간에 그친 모양이다. 아침 7시 시작하는 독서 모임을 안전하게 다녀왔다. 세 식구 함께 점심을 먹고 나니 가장이 내원사로 산책을 나가자고 한다. "다시 비가 오는데?" "월요일 시험인데?" 딸램과 나는 가서는 안될 약한 이유를 한 마디씩 내뱉었다. "비가 오니까 더 좋지. 비 올 때 산책하면 계곡 물도 좋고 공기도 맑고 더 좋아." "하루 종일 공부만 해도 능률적이진 않아." 다 맞는 말만 하는 가장에게 반박하지 못하고 따라나섰다. 우리끼리 있었으면 집에서 영화나 봤을 거라면 딸램과 쑥덕거린다. 집에서 15분 거리의 내원사. 이렇게 가까운 곳에 이 멋진 자연의 혜택을 누릴 수 있다는 건 엄청난 행운이다. 아무리 훌륭한 전원주택을 지어 마당과 정원을 ..

여행 2024.10.19

상북 산책길

가을이다. 아침을 먹고 느지막이 집을 나섰다. 볕이 따가워도 가을볕인데 어떠랴. 주말 가장의 출타로 하루 종일 땅을 못 밟아본지라 지기가 고픈 날이다. 운동화를 단단히 동여 매고, 반바지에 민소매티, 얇은 카디건을 걸치니 초가을 느낌이 살짝 난다. 상북면으로 이사를 오고는 바로 땡여름이라 낮시간에 걷는다는 건 엄두도 내지 못했다. 오랜만에 가을에 취해볼 각오를 하고 나섰다. 그래도 아직은 내리쬐는 햇볕이 달갑지만은 않다. 우리 아파트에서 나오면 처음에는 차도 옆 인도를 따라 걸어야 한다. 다행히 그 길이 길지 않고, 통행량도 많지 않아서 참을 만하다. 처음 와 본 길을 어찌 그리 잘 아는지 가장의 안내를 따라 걷다 보니 정말 제대로 된 산책길이 나온다. 먼저 콩과 빨간 고추가 익어가는 논밭이 보인다. "..

여행 2024.10.06

구인사에서 참배하는 순서

처음 천태종 총본산인 구인사를 방문하면 그 규모와 인파에 놀라기 마련이다. 특별한 이벤트가 있는 날이면 더더욱 밀려드는 사람들에 놀라게 된다. 혹시 공양이라도 할라치면 그 많은 사람들을 어떻게 수용할 수 있을지 입이 쩍 벌어진다. 나의 놀람이 무색하게 모든 일은 빈틈없이 착착 진행된다. 구인사하면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오늘은 구인사에 방문해서 각 법당마다 인사를 하는 순서를 알려드리려 한다. 반드시 이러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50년 가까운 세월 동안 구인사를 다니며 지극 정성으로 기도하신 어머님께 전해 듣고, 함께 다녀본 얘기니 따라 해도 좋을 것이다. 비단 울어머님만의 의식은 아닌 것 같다. 소원하는 바가 있어서 염원을 세우고 구인사를 착실히 방문하시는 대부분의 신도들의 의식인 듯하다. 주차장에 ..

여행 2024.03.11

나는 쑥, 너는 민들레

원동 매화 축제가 시작되는 날이다. 철 따라 꽃 따라 소풍 가는 걸 좋아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붐비는 곳은 절대 피하고 싶은 사람들. 아침 일찍 8시경 시어른들을 양산으로 오시게 하고 도시락을 싸서 원동으로 간다. 이른 출발임에도 평소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좌회전하지 마시오.' 안내판은 서있어도 아직 길을 막아놓진 않았다. 잽싸게 좌회전을 해서 목적지로 향한다. 우리는 축제 장소가 아닌 우리만의 아지트를 찾아가는 길이다. 원동초등학교를 통과해서 팔각정으로 올라가면 사람들이 잘 모르는, 멋진 매화향연을 즐기며 쉴 수 있는 곳이다. '어라 막아놨다.' 우리의 기대와 달리 학교 앞을 막아놔서 아예 진입할 수가 없다. 주변에 주차라도 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주차장은 한참 멀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쭉 더..

여행 2024.03.10

광양매화문화관

구인사를 1박 2일로 다녀온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가장은 또 찾고 있었나 보다. 또 어디로 떠나볼까? 여기저기 물색한 결과 목적지는 광양 매화 문화관과 옥룡사지 동백나무숲으로 정해졌다. 편도 2시간이 넘는 거리지만 이제는 당일로 다녀오는 것에 전혀 부담을 갖지 않는다. 피곤하면 교대로 운전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으니 일단 떠나고 보는 거다. 10년 전 하동 진교에 사는 시누이네와 함께 매화 축제 구경 갔다가 허탕을 친 기억이 있다. 나름 서둘렀음에도 길이 꽉 막혀 진입이 불가했다. 다행히 지금은 축제 기간이 아니다. 대신 만개한 꽃을 보기 힘들다는 아쉬움은 있지만 너무 복잡한 것보다 나으리라. 언제나처럼 달인김밥을 사고, 사과, 오렌지, 용과를 잘라 통에 담았다. 가장이 사랑해마지 않는 오징어포와 소금..

여행 2024.03.05

안동 봉정사 극락전

추석 연휴 마지막 이틀 동안(2023년 10월 2일~3일) 우리 가족은 경북 안동 봉정사를 거쳐 충북 단양에 있는 구인사를 방문하기로 했다. 참 감사하게도 10월 2일이 임시공휴일로 지정되고, 때 맞춰 우리 집 가장이 취소되는 휴양림 룸을 잽싸게 잡았다. 최종 목적지인 구인사와는 1시간 거리가 있는 소선암 자연휴양림. 지난겨울에도 묵었던 곳이라 익숙하다. 부산에서 구인사까지 당일로 다녀오기는 벅찬 거리다. 점점 연로해지시는 시부모의 체력도 그러하고, 여행은 모름지기 여유가 있어야 맛이지 않은가. 울부부는 구인사를 분기별로, 어머님, 아버님을 모시고 1박 2일로 다녀오기로 진작에 마음을 먹었다. 어젯밤에는 땅콩조림과 부추겉절이를 만들었다. 소선암에서 김치찜을 해 먹겠다고 했지만 소소한 밑반찬은 있어야겠기에..

여행 2023.10.18

황룡사 9층 목탑에 꿈을 싣고

지난 주말 다녀온 감성순례 마지막 시간에 황룡사 9층 목탑이 그려진 스크래치 페이퍼를 선물 받았다. 9가지 소원을 적고, 하나 하나 이뤄지길 기원하면서 한층 한층 탑을 지워 나가면 9층 목탑이 완성되고 소원도 이뤄진단다. 남편은 유심히 듣고 기억을 하고 있었는지 카페에 가서 정말 해보자고 한다. 급히 저녁을 먹고, 설겆이도 못한채 우리 식구들이 즐겨 찾는 집앞 카페 빅딜에 왔다. 남편이 참 좋아하는 자리가 있다. 음향장비 바로 앞, 넓은 테이블인데 매번 잔잔한 음악을 들려주기에 주변에 신경을 뺏기지 않고 몰입하기가 딱 좋다. 남편은 블루베리스무디, 채언이는 딸기스무디, 나는 에스프레소를 시켜놓고 앉았다. 에스프레소를 마시냐구요? 네버! 가져온 텀블러에 담아 내일 아메리카노로 마실 작정이다. 나이가 들어가..

여행 2023.06.30

장 줄리앙

다음 주말 절친과 딸 혜원이가 수원에서 내려온다. 함께 어디를 가면 좋을까 궁리하던 중 장마철이고하니 실내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을 찾기로 했다. 어찌어찌 찾다보니 경주 우양미술관에서 '장 줄리앙'의 전시회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장 줄리앙! 유머러스하고 재미있는 일러스트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프랑스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아티스트다. 사실 예술과 담을 쌓고있는 나로서는 이름도 생소하지만 알고보니 우리나라와 꽤나 친숙한 일러스트레이터다. 국내 여러 기업과 콜라보로 만들어진 상품들도 꽤나 많다. '예술은 어려운 것이야'라는 고정관념에 강하게 스크래치를 내어주는 대목이다. 예술은 생활에 이렇게 가까이 접목시켜 재미와 가치를 더하는 참 훌륭한 도구가 된다. 장 줄리앙은 깊고 세심한 관찰력과 자유분방한 표현력,..

여행 2023.06.28

감성순례, 내 마음 다시 봄

와이에스나비 독서모임 멤버인 은하쌤 소개로 감성순례라는 프로그램을 알게 되었다. 임신한 딸과 함께 다녀왔다며 강강추하신다. 감성순례는 경주에서 1박 2일 동안 5대 종교를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부제는 '내 마음 다시 봄'이다. 이 프로그램은 '놀이와 답사연구소' 이수진 대표님이 기획하셔서 종교문화 공모전 시, 도 대회에서 각각 1등을 하고, 다시 전국대회에서 1등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경주시와 경상북도, 문화체육관광부의 후원으로 3년간 전액 무료로 진행된다. 올해가 2년째로 14번 개최된다. 그 중에 우리 가족은 7기로 다녀왔다. 입소문이 나서인지 경쟁률이 치열해서 접수 시작 시간에 맞춰 스탠바이를 하고 있어야 한다. 우리가 참여한 7기도 7분컷으로 정원 30명이 마감이 되었다고 한다. 우리 가..

여행 2023.06.26

다맥 어촌 체험휴양마을

사천시 서포면 다맥 어촌 체험마을. 남편의 외가 가족들이 모였다. 어머님의 형제자매분들은 유달리 돈독한 우애가 있어 매년 이 맘때쯤 한 자리에 모여 1박 2일 행사를 한다. 이번에도 어머님 아버님을 비롯해 어머님의 여섯 형제자매와 그 배우자분들, 그 분들의 자제분들, 또 그들의 자녀까지 모인 가족수가 37명이다. 올해는 12년전 결혼 후 처음으로 가족 행사에 참여했던 그 장소로 다시 모였기에 감회가 새롭다. 그 때는 숙소 앞 바닷가에 태풍으로 청각이 엄청 밀려와 있었다. 바닷가 고성 출신인 어머님과 세 분의 시이모님은 그냥 버려두기 너무 아까우셨든지 손에 손에 까만 비닐봉지를 들고 주워담기 바쁘셨다. 들뜬 마음이라 그랬든지 이모님 한 분이 서두르다 그만 미끄러져 살짝 다치기도 했던 에피소드가 있다. 이번..

여행 2023.06.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