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비 내리는 내원사

맹물J 2024. 10. 19. 22:55

어제 온종일 비와 바람이 기성을 부리더니 다행히 새벽 시간에 그친 모양이다. 아침 7시 시작하는 독서 모임을 안전하게 다녀왔다. 세 식구 함께 점심을 먹고 나니 가장이 내원사로 산책을 나가자고 한다.
"다시 비가 오는데?"
"월요일 시험인데?"
딸램과 나는 가서는 안될 약한 이유를 한 마디씩 내뱉었다.

"비가 오니까 더 좋지. 비 올 때 산책하면 계곡 물도 좋고 공기도 맑고 더 좋아."
"하루 종일 공부만 해도 능률적이진 않아."
다 맞는 말만 하는 가장에게 반박하지 못하고 따라나섰다. 우리끼리 있었으면 집에서 영화나 봤을 거라면 딸램과 쑥덕거린다.

집에서 15분 거리의 내원사. 이렇게 가까운 곳에 이 멋진 자연의 혜택을 누릴 수 있다는 건 엄청난 행운이다. 아무리 훌륭한 전원주택을 지어 마당과 정원을 꾸며도 이 자연의 호사를 따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내원사 가는 계곡

한 여름에는 여기가 핫플이었으나 가을에 접어들면 특히 오늘처럼 비가 내리면 인적이 뜸하다. 그래서인지 터져서 떨어진 밤송이 사이에 실한 밤알이 제법 남아 있다. 한 손 가득 주워서 가장이 메고 있는 가방 속 작은 지퍼를 열어 담았다. 거의 우리 가족의 독무대 같은 산책로. 대부분 자갈길이거나 아니면 낙엽이 쌓여서 길을 포장해 주니 신발에 묻어나는 진흙도 없다. 콸콸 쏟아지는 계곡 물소리가 시원시원하고 좋다. 비바람에 쭉정이는 날아가고 알곡만 남듯이 성급히 익은 낙엽은 떨어지고 푸른 잎을 매단 싱싱한 나무들이 돋보인다. 멀리 안개 낀 산도 참 운치 있다.

비가 온 뒤라 물이 콸콸

대웅전에 들러 3,3,3배를 하고 잠시 처마 끝에 비를 피하며 경내를 감상한다. 비 내릴 때 이런 경치를 너무나 사모하는 가장은 감탄사 연발이다. 깔끔하게 정돈된 사찰에 비까지 내리니 눈이 맑아지고 차분히 내려앉는 마음도 좋다.

비 내리는 내원사1
비 내리는 내원사2
비 내리는 내원사3

내원사만 방문하기는 못내 아쉬워 40분을 더 걸어 노전암에도 갔다. 노전암에는 우리 가족 외에는 암자 식구들 뿐이다. '멍멍' 비를 맞고 뛰어다니며 짖어대는 누렁이 몇 마리, 안전한 자기 집에서 가끔 짖는 흰둥이. 저기가 종무소인가 싶은 곳에서 법복을 입고 앉아계신 비구니스님. 방문을 통해 비 내리는 경내를 주시하고 계신 스님은 무슨 생각을 하실까 잠시 생각해 본다. 암자에서도 3,3,3배를 드리고 잠시 앉았다 나오니 스님이 따라 일어서신다. 늦은 시간은 아니지만  비바람이 치고 제법 어둑해지고 있는데 들어선 우리가 염려되신 모양이다. 오는 길은 안전했는지 물으시고 조심해서 가시라며 인사해 주신다. 합장으로 답한다.
'네 스님, 종종 들리겠습니다.'
스님께 들릴 리 없는 말을 우리끼리 주고받으며 내려왔다.

내려오는 내내 딸램은 온갖 노래를 종류별로 부르고, 어떻게 쉼 없이, 각종 말로 하는 게임들이 생각나는지 끝없이 쫑알거린다.  

#내원사 #노전암 #비오는날 #비오는내원사 #비오는사찰 #비오는노전암 #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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