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어느 날 니체가 내 삶을 흔들었다

맹물J 2023. 4. 24. 11:32

작가 장석주는 19세 때 니체가 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고, 그의 운명이 바뀌었다고 한다. 난놈?은 이래서 다르구나 생각했다. 아직 반평생을 살아도 제목만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봤지 책장 하나 넘겨보지 못했고, 혹자는 읽다가 어려워서 포기했다고 하는데 말이다. 요는 나는 차라투스트라가 어떻게 말했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장석주 작가를 믿고, 온통 니체를 말하는 책을 집어 들었다. 아니 실은 자유의지가 아니라 부산큰솔나비의 지정도서이기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표지의 형이상학적인 그림은 이해하지도 못한채 내 마음에 와닿는 편안한 컬러만 보고 내식대로 해석을 시작했다. 에세이 정도의 가벼운 내용이겠거니. 그리고 바로 알았다. 내 선입견에 내가 속았음을. 내가 장석주 작가의 진중함과 무게감을 제대로 알지 못했기에 감히 할 수  없는 상상을 한 것이다. 즉 내게는 어렵다는 얘기다.그래도 꾹꾹 참으며 읽는다.


나는 니체를, 그의 철학을 잘  모지만 장석주 작가가 언급하는 니체의 철학 몇가지만 들어봐도 왜 작가의 삶을 흔들었다고 하는지 알겠다. 상식에 반하는, 그래서 누군가는 '헛소리하고 있네' 할 법한 생뚱맞은 개념들. 무시하고 넘어가도 그 뿐일테지만 작가는 진지하게 받아들였기에 지금의 장석주 작가가 있지 않았나 생각된다. 장석주 작가는 '대추 한 알'이라는 시로도 유명하다.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날.' 읽을 때마다 감동이다. 어떤, 어느 정도의 사색과 관찰력이 있으면 이런 시가 나올까.

기존 나의 고정관념을 깨는 니체의 철학 몇 가지를 언급해보려 한다. 사실은 순수한 니체의 철학인지 장석주 작가의 생각을 덧입힌 것인지 지금의 나로서는 구분할 방법이 없음을 염두에 두고 읽기를 바란다.

첫째
미래란 지금 이 순간에 아직 도착하지 않은 시간이 아니다. 미래는 이미 와 있다. 순간은 영원히 순환하고 되풀이한다. (....) 지금 이 순간은 언젠가 지나간 과거의 순간과 중첩되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은 영원 회귀하는 순간이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지속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되풀이라는 것"이다. 만물은 영원 회귀의 운동을 지속한다. 올해의 봄은 작년의 봄과 닮았지만 똑같은 봄은 아니다. 봄은 늘 똑같이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차이를 반복한다. 모든 봄은 항상 우리가 겪지 못한 새로운 봄이다.

과거, 현재, 미래는 일직선상에서 순서적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공존한다. 이 순간 어떻게 동시에 존재한단 말인가. 짧은 지식으로는 이해되지 않는다. 아니 이해의 영역이 아니라 느껴야 하는 건가? 육감처럼. 영원회귀! 혹시 이런걸까? 2차원에서는 동전의 양면, 즉 앞, 뒷면이 전혀 다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3차원에서 보면 같은 동전의 다른 면이란 것을 알 수 듯이. 3차원 공간을 살아가는 나는 이해가 안되는 과거, 현재, 미래의 공존이, 4차원 세상에서는 너무 당연한 것이 되는 걸까?

둘째
신체가 이성의 도구가 아니라 이성이 신체의 도구다.

니체는 신체를 깔보는 자들을 경멸했다고 한다. 니체가 아름답고 매혹적인 팜프 파탈 루 살로메를 미치도록 사랑한 것도 같은 맥락일까?

세째
인간은 자연에게 말기 암세포같이 넓게 퍼진 유해한 병원체에 지나지 않는다.
.....
인간종 중심주의는 물론이거니와 컴퓨터, 유전 공학, 나노 기술 따위를 기반으로하는 기술과 과학이 인간의 난제를 다 해결할 것이라는 맹신에서 깨어나야 한다. 지구는 인간 전유물이 아니라 모든 생물종들과 함께 공유하며 사는 행성임을잊지 말자.

인간은 어쩌면 지구에 암세포 같은 존재이고, 지구는 인간의 전유물이 아니라 모든 생물종들과 함께 공유하며 사는 행성이라는 말에 깊이 공감한다.

네째

약자의 선량함은 위선이다. 그들은 나쁜 짓을 하려 해도 차마 용기를 낼 수 없어서 포기한다.

우리는 흔히 약한 사람을 착하다고 표현한다. 그것은 분명히 잘못된 표현이다. 약한 사람이라고 하여 자기 생각이 없거나 욕구가 없는 것이 아니다. 단지 용기가 없어 긍정도 부정도 아닌 중립인듯 어정쩡한 자세가 다수나 목소리가 큰 사람의 의견으로 수렴될 뿐이다. 다수나 목소리가 큰 사람이 꼭 옳은 것도 아닐진대 그들에게 힘을 실어줌으로써 옳지 않은 일을 정당하게 만들어버리는 효과가 발생한다. 니체가 약자와 패배자에게 그토록 단호한 이유도 약자가 세상에 부조리와 폭력에 맞서기보다는 타협하고 안주하기 때문이란다. 그들이 일견 착한게 보이지만 약함을 이용한 위장일 뿐 자신만의 안녕, 자신만의 행복, 자신의 안전에 집착하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으며 누구이고 어디로 가는가?
아직 많은 책을 보진 못했지만 인문학, 철학 책들을 보면 공통적으로 이런 화두를 던진다. 그리고 결론은 '자기답게 살아라'이다. 이 책도 예외는 아니다.

니체는 하루 중 3분의 2를 제 마음대로 쓸 수 없는 사람은 노예라고 한다. 자유정신을 가지고, 사는 동안 웃음과 춤을 배우라고. 인간의 뇌는 목적 없는 삶을 견딜 수 없으니 행복을 원한다면 물질이 아니라 의미가 풍부한 삶을 살라고 한다. 사람은 저마다 마음 속에 자기 세상이 있는 법이다. 우리가 보는 세상은 세상 그 자체가 아니라 우리가 느끼고 생각하는 대로의 세상이다. 자의든 타의든 나에게 형성된 관념이 만들어 놓은 세상을 보는 것이다. 이 관념을 타파한 다음 인간 즉, 위버멘쉬를 지향하라. 위버멘쉬는 있는 그대로의 모든 것을 긍정할 줄 알아서 고통마저도 자신을 성장시키는 기회로 삼는다(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라. 카프페디엠). 외부의 힘이나 절대자에게 의존하기 보다 자신의 삶에 집중하고, 스스로의 가치를 창조해내는 자 사람이다. 자유를 얻은 자, 신과 같은 관념을 파괴한 뒤에 돌아와 창조할 자, 위버멘쉬에게 필요한 것은 무리나 추종자가 아니다. 더불어 함께 창조할 자, 새로운 가치를 새로운 판에 써 넣을 친구를 찾는다.

위버멘쉬를 지향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삶은 얼마나 멋질까? 철학과 인문학은 말한다. 나답게 살라고. 내가 누구인지를 알고,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내가 원하는 것을 하라. 내가 즐거운 일을 하고, 내가 잘하는 일을 하라. 이것이 위버멘쉬를 지향하는 삶이 아닐런지. 니체, 차라투스트라! 다분히 이과성향을 가진 내게 막연히 어렵게 느껴졌던 인물들에 찐한 호기심을 유발한 이 책이 고맙다. 니체의 철학에 입문해볼 엄두를 내게 해주신 장석주 작가님께도 무한 감사를 드립니다.

#장석주 #니체 #신은죽었다 #차라투스트라 #차라투스트라는이렇게말했다 #어느날니체가내삶을흔들었다 #니체와함께하는철학산책 #위버멘쉬

반응형

'책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문 약방  (0) 2023.05.09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0  (0) 2023.04.28
자기 앞의 생  (0) 2023.03.31
작가 이명률  (1) 2023.03.29
숲속의 자본주의자  (0) 2023.03.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