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0

맹물J 2023. 4. 28. 17:24

한 분야에 대해 깊이 아는 것도 별로 없지만 지식의 범주를 생각한다면 내가 아는 넓이는 더 부끄러운 수준이다. 이런 내게 딱 안성맞춤인 책을 은하쌤의 추천으로 함께 읽기 시작했다. 550페이지가 넘은 책을 보며 두께에 짓눌기 싶지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두께만큼 내용의 무게감이 무겁지는 않다.

글을 읽거나 학식이 있는 사람과 얘기를 나누다보면  곧잘 무슨 주의나 어려운 서양 철학자들 이름을 접하게 된다. 또, 때로 나의 존재에 대한 궁금증으로 거슬러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다다르게 되는 막다른 길, 인류의 시조는 누구? 불교, 기독교 같은 종교는 누가 언제 왜 어떻게 지금의 상태가 되었는가? 그럼 다른 종교들은? 다양한 질문들에 당혹감을 느낄 때가 있다. 알 법한 사람에게 물어보기에는 나의 무지가 들통날까 부끄럽고, 스스로 알아낼려니 어디서 어떻게라는 의문이 생긴다. 인터넷 서치만으로는 단편적인 지식 이상이기는 어렵고, 전체 흐름을 파악하기에는 너무 많은 에너지가 든다. 무엇보다 그걸 다 알아낼만큼 간절히 궁금하지도 않기에 다른 일에 밀리기 일쑤다.

그런데 이 책 한권으로 전체 흐름을 알게되니 책값이 아깝지 않다. 물론 책값은 내가 직접 지불한 것은 아니고 시립도서관에서 빌린 책이니 내 세금이 일부 기여한 정도가 되겠다.

양자역학에 따르면 아주 작은 미시 세계의 대상들은 우리가 보는지, 보지 않는지에 따라 다른결과를 도출한다. 그것이 말이 되는가? 예를 들어 소립자가 우리가 관측하지 않을 때는 물결과 같은 '파동'으로 존재하다가 우리가 관측하기 시작하면 야구공 같은 '입자'인 것처럼 행동한다는 것이다. 근대 물리학자들은 이것이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그건 그저 너무작은 대상들을 측정하려다 보니 발생한 측정 장비의 문제일 뿐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결과는 양자역학자들의 승리였다. (...) 이것이 근대 물리학이 막을 내리고 현대 물리학으로 전환하게 한 '코펜하겐 해석'이다. (...)
"소립자들은 여러 상태가 확률적으로 겹쳐 있는 파동함수로 존재하고 있다가, 관찰자가 측정을 시작하면 파동함수의 붕괴가 일어나면서 하나의 상태로 결정된다."


<시크릿>,<해빙> 같은 류의 책을 보면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나는 아니다. 나는 그 책 내용을 거의 80%이상 믿는다. 아니 믿는다는 표현은 적확하지 않다. '그것은 과학이다'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누군가 물으면 그가 납득이 되도록 설명하진 못한다. 막연히 '양자역학으로 접근하면 과학적으로 설명이 가능하다고 하더라'라는 정도만 얘기할 수 있다. <지.대.넓.얕>은 이런 가려운 부분까지 간단히 긁어주는 책이라 추천한다. 시원하게 긁히고 싶으면 관련분야의 더 전문적인 자료를 찾으면 될 일이기에 일단은 넘길 수 있다.  

자연은 신이 움직이고, 신은 사제가 움직였으며, 사제는 인간이 움직였다. 신, 사제, 인간, 자연은 서로가 서로의 원인이자 결과로 긴밀하게 엮여 공존했다. 고대인의 세계에서는 신이 월등하게 위대한 존재이고 인간은 보잘것없는 부속물이 아니었다. 모든 존재는 각자의 위치에서 역할을 다해야 했다. 그럴 때 질서가 유지되고 우주와 삶이 지속될 수 있었다.

지금 시대에 신을 절대자로 숭앙하고 있는 사람들은 뭐지? 신의 존재를 만든 것도 인간이고, 신의 영역은 인간이 감히 범접하지 못할 신성한 곳으로 규정한 것도 인간이지 않은가. 그래서 어릴적 막연히 했던 생각. '신이 그렇게 전지전능하다면 왜 저렇게 착한 사람이 불행한 일을 당하게 하는가? 그렇게 전지전능한 분이라면 지금 고통받는 사람들한테서 왜 단번에 고통을 덜어줄 수 없는가?' 여기에 답을 할 수 없었던 것인가.독실한 신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무지몽매한 의문일지 모르겠다. 무언가를 선택하기에 앞서 충분히 배경 지식을 알고 모르고는 큰 차이를 만든다. 무언가를 알기전에 선택을 강요받는 환경이나 선택하는지도 모르고 선택되어진 환경에 처해지지 않아서 감사할 따름이다. 이를테면 모태신앙같은.

이 책을 읽기전에는 태어나자마자 이원론적인 세계관이 당연시 되는 세상을 내가 살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  선과 악, 주류와 비주류, 물질과 정신, 동양과 서양, 우등생과 열등생, 인간과 자연처럼 세상을 항상 이분법적으로 나누고 있었다. 나도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이왕이면 주류에, 이왕이면 우등생에, 이왕이면 선에 가까워지려고 애쓰고 있었던 것이다. 서양의 이원론적 사고에서는 인간이 중심이고 자연은 대상일 뿐이다. 인간은 자연을 이용하다 못해 훼손을 시키면서까지 개발을 한다. 그래서 지금의 편익도 있겠지만 그 무절제가 불러온 기후 위기 같은 재앙을 고스란히 치뤄내야만 한다. 자아와 세계가 하나라는 동양의 일원론보다 서양의 이원론을 더 높게 평가하다보니 서양을 배우고 모방하는 역사가 되어 버렸다. 그래서 작가는 '우리는 동양인으로 태어난 휼륭한 서양인이 되었다'라고 표현한다. 그러나 다행히도 19세기 니체는 이원론의 한계를 냉철하게 지적했다고 한다.

이 책의 저자 '채사장'. 이름치고는 참 독특하다싶어 검색을 해봤다. 저자는 큰 교통사고를 겪고 병상에서  니체의 <차라투
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고 지금까지 살아왔던 방식으로 살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뭐지? 얼마전에 읽었던 장석주 작가의 <어느 날 니체가 내 삶을 흔들었다>에서도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는데 그냥 흘려서는 안되는 책인 것 같다. 바로 양산시립도서관 사이트를 열고 상호대차 신청을 했다. 대체 어떤 책인지 너므너므 궁금해진다. 이렇게 책 한권을 마무리하고 나면 자연스레 또 다른 책으로 이어지는 책이 좋다.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1, 2>도 시리즈로 당연히 읽어야 할 책이다. 단돈 1,2만원으로 작가의 수십년 갈고닦은 지식과 신념, 철학을 고스란히 전달받을 수 있음에 감사에 감사를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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