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인문 약방

맹물J 2023. 5. 9. 06:58

'약사가 인문학을 만나면?'을 부제로 달아도 좋을 듯하다. 저자 김정선은 약사다. 프로필을 보면 본업에 엄청 매진해서 성과도 내었지만 천식이라는 병을 얻고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한 것 같다. 그 계기가 되었던 것이 인문학이고, 사주명리와의 만남이다.


저자의 전공이기도 하고, 한때는 맹신했던 약학, 제약, 의료 관련 일에 회의감을 강하게 표현한다. 이에 현명한 방법으로 방향을 턴하고, 자신과 현실에 맞게 조화점을 찾아간다. 제약회사나 의료기관들이 사람을 실험 동물이나 물건처럼  대상화하고, 얼마나 철저하게 자본의 논리로만 움직이는지를 익히 알고 있었던지라 새로울 것은 없었다. 여러 책을 통해 기존에 알았던 정보에 한 번 더 힘을 실어주는 역할을 할 뿐이다. 아직 이 정도의 정보도 없이 그저 의사나 약사를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사람들의 희생이 안타깝다. 전문가 집단에 지나친 의존으로 스스로를 돌보는 방법을 모르고, 맹목적으로 따르기만 한 결과는 누가 책임져야 할까? 당연히 환자 본인임에도 마치 그들이 끝까지 책임을 져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의심하지 않는다.

p.41
아프면 치료를 위해 병원에 가고, 아프지 않으면 건강검진을 위해 병원을 간다. 사회는 거대한 병원이 되었다. (...) 우리는 의사의 지시를 따르는 아바타가 된다.

p.83
진통제는 의사나 약사를 만능으로 만들어 주는 약일지도 모르겠다. 이 약들의 효과에서 그들의 권위가 나온다고 해도 좋을 정도다.

필요하면 당연히 병원을 이용해야한다. 그러나 기본적인 건강관리 방법은 약간의 건강정보를 바탕으로 식습관이나 생활습관을 건강하게 하므로써 지켜진다는 것을 믿고 행동했으면 좋겠다. 그러면 병원, 약국은 최소한으로 이용할 수 있을 것이고, 의료비용도 엄청나게 줄어들 것이다. 여기에도 빈익빈 부익부가 작용하는지 병원을 가는 사람은 병원 갈 일이 더 많고, 잘 가지 않는 사람은 10년에도 한두번 갈까 말까다.

이 책에서 새로운 관점으로 와닿는 신선한 점이 2가지 있다. 하나는 잠에 관한 것이고, 또 하나는 늙음에 관한 것이다.

사람들을 만나 얘기를 나누다보면 둘 중에 한명은 수면장애를 갖고 있는 것 같다. 실제로 잠을 잘 못자는 것도 있겠지만 저자의 말처럼 깨지 않고 연속적으로 6~7시간을 자야 정상이라고 규정짓는 것부터가 문제의 출발점이지 않을까 싶다. 로저 에커치는 <잃어버린 밤에 대하여>에서 근대 이전의 유럽 사람들은 잠을 두 번에 걸쳐서 잤다고 한다. 선사시대의 잠의 조건에 해당하는 매일 밤 14시간 정도 인공조명 없이 몇 주에 걸쳐 살게 하자, 실험 참가자들은 산업화 이전 시대 사람들처럼 자주 끊기는 잠의 유형을 보였다고 한다.  그러니까 지금은 수면 장애로 불리는 것이 사실 태곳적부터 동물과 인류에게는 보편적이었다는 것이다. 수백만년에 달하는 인류의 역사를 보건대 고작 몇백년만에 인간 DNA의 유전정보가 쉬이 바뀔리 만무하다. 그러니 정상 범주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바꿔보는 것이 더 현명하지 않을까? 간혹 밤잠을 보통사람보다 짧게 자고 대신 낮잠을 꼭  10~20분 잔다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누구에게나 주어진 24시간을 보다 효율적으로 활용하고자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이런 원리를 진작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경험적으로든 지식으로든.

마지막으로 '젊음'과 '늙음'에 대해 얘기해보자. 언젠부턴가 사람들이 '이쁘다'는 말보다 '젊어 보인다'는 말을 더 듣고 싶어한다는 것을 알았다. 50대의 나이에도 20대의 미모와 젊음을 과시하는 연예인이 있고, SNS에도 일반인들의 젊음 자랑이 뜨겁다. 작가의 말처럼 자기 나이대로 보이는 것은 슬픈 일이 되었다. 얼마전 영상으로 만난 작은올케언니와 스시집에서 만난 큰올케언니가 젊어졌다. 젊음에 대한 우리의 욕망이 의료산업을 포함한 각종 산업을 키운단다.
  
도서관에서 잠시 근무하면서 알게된 50대 후반의 명숙언니에게 물었다. 참 오목조목 이쁜 언니다.
"20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으세요?"
"아니. 절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나는 20대가 더 힘들었어. 지금의 나의 생각이나 의식수준을 갖고 돌아간다면 모를까? 그런데 그럴 수는 없잖아."

'젊음'에 갇히지 않고 자유로울 수 있는 새로운 욕망의 배치를 위해, '늙음'이라는 새로운 가치를 기르기 위해 차근히 공부해가고 싶다.

나도 그렇다.

#인문약방 #김정선 #와이에스나비 #늙음예찬 #수면장애 #의료산업희생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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