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아버지의 해방일지

맹물J 2023. 1. 14. 07:46

정지아의 장편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읽었다. 여즘 워낙 핫한 소설이라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는 것도 쉽지 않았다. 무엇이 이토록 사람을 매료시키길래 예약하지 않으면 볼 수 없을까? 최근 10년이상은 거의 소설책을 읽은 적이 없다. 요즘 들어 독서모임 도서로 지정되어 몇 권 읽게 되었다. 작가 자신의 자전소설들이 좋다. 완전 허구가 아니라 충분히 있을 법한 아니 있었던 이야기에 독자를 위해 색깔을 입히고, 모양을 다듬은 것이 더 생동감 있다.

 

 

이 소설 또한 작가의 아버지, 빨치산인 아버지 이야기를 담았다. 시작은 이렇다.

'아버지가 죽었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진지 일색인 아버지가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뇌진탕으로 돌아가셨다. 시작부터 웃어야할지 울어야할지. 인간은 본질적으로 멀티가 안된다는데도 눈물을 흘리면서 '푸하' 웃게 만드는 방식이다. 어쨌든 그 후 장례를 지르는 3~4일간의 이야기가 한권의 소설이 되었다. 

 

아버지는 빨치산이어서 겪내야만 하는 애환이 많다. 작가는 빨치산의 딸이어서 극복해야만 했던 고난이 적지 않다. 작은아버지는 빨치산의 동생이어서 겪어야 했던 불이익과 설움으로 한이 맺힌다. 아버지는 자발적인 선택이었지만 딸과 동생은 그렇지 않기에 수십년을 용서하지 못하고 살아간다. 동생인 작은아버지는 거의 평생을. 결국 아버지의 죽음앞에 아버지의 사람들을 보면서 옹골차게 형성된 엉어리가 서서히 녹아 내린다. 작은아버지는 장례 거의 막바지에 가서야 받아들인다. 작가는 말한다.

 

'죽음은 그러니까 끝은 아니구나. 나는 생각했다. 삶은 죽음을 통해 누군가의 기억 속에 부활하는 거라고. 그러니까 화해나 용서 또한 가능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아버지와 뜻을 같이 했던 동지들과 그들의 자녀들,  이웃들, 동네를 방문한 행상, 동네의 불량기 가득한 여고생과 그녀의 엄마 등등... 이들의 따뜻한 마음을 통해 혁명가인 아버지가 아니라 지극히 인간적인 아버지를 만난다.

 

'아버지가 이 작은 세상에 만들어 놓은 촘촘한 그물망이 실재하는 양 눈앞에 생생하게 살아났다.'

 

인간 아버지의 십팔번은 3곡이다. 

'그는 그만의 사정이 있것지.'

'사람이 오죽했으먼 글겄냐.'

'긍게 사램이제.'

 

작가는 말한다.

"나의 비극은 내 부모가 빨치산이라서 시작된 게 아니었다. 더 멀리 더 높이 나아가고 싶다는 욕망 자체가 내 비극의 출발이었다. 

쉰 넘어서야 깨닫고 있다. 더 멀리 더 높이 나아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행복도 아름다움도 거기 있지 않다는 것을. 성장하고자 하는 욕망이 오히려 성장을 막았다는 것을."

 

나의 비극?도 어쩌면 작가와 비슷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생뚱맞게 이것이 어릴적부터 세뇌되어진 교육탓이 아닌가로 생각이 이어진다. 언제나 서열을 매기고, 남보다 나아야 한다고 주입된 사고방식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냥 나 자체, 공부는 적당히 하고, 부끄럼이 많아 나서기 싫어하고, 노래는 못하지만 수학을 좋하하고, 부지런하고, 성실한 나로도 충분히 고귀하고 행복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몰랐다. 나도 쉰이 되어 깨닫게 되어 천만 다행이다. 작가의 말처럼 환갑 전에 알기는 했으니 쭉 모르는 것보다는 낫다. 마지막까지 울며 웃게 만드는 것이 정지아 작가의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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