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관계의 최고봉

맹물J 2023. 2. 9. 17:10

어쩌다보니 신영복의 마지막 강의 <담론>을 읽게 되었다. 구구절절 곱씹고 새기고 싶은 맘에 책장을 쉬이 넘길 수 없다. 사실 그 유명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도 <강의>도 읽지 않았기에 이해나 할려나 싶었지만 내 손에 들어온 순서가 역순이다보니 되는 만큼 이해하기로 하고 시작해본다. 예전의 나 같으면 어림없는 시도지만 어찌 삶이 내 계획대로 내 뜻대로만 되든가 말이지. 예기치 못한 일이 비일비재 일어나는 세상에서 숫자 '1'뒤에 꼭 '2'가 와야한다고 고집하면 '꼰대'나 융통성없는 사람 소리 듣기 십상이다.


처음부터 2~30페이지를 읽다보니 굳이 순서를 지켜읽어야 할 이유가 없겠다. 가장 눈에 띄는 소단원 '16.관계와 인식'을 펼쳤다. 10페이지 남짓한 내용을 요약해보면 이렇다.

참된 인식이란 관계 맺기에서부터 시작된다. 관계가 있어야 할 뿐 아니라 애정이 있어야 한다. 관계가 애정의 수준일 때 최고의 인식이 가능하다.

쑥과 잡초의 차이는 쑥은 이름이 있는 풀이고, 잡초는 이름이 없는 풀이다. 이름이 있다는 것은 우리의 인식의 대상이라는 뜻이다. 쑥이 인식의 대상인 까닭은 우리와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쑥을 활용해 쑥떡도 해먹고, 쑥국도 끓여먹는다. 때로 약으로도 쓴다. 이렇게 쑥은 우리와 유익한 관계를 맺는다. 때로 애정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쑥향을 너무 좋아해 쑥파우더로 케이크를 만들어 이웃과 나누기늘 즐겨하는 지아리더님이나 몸이 차가운 여자들에게 쑥차가 좋다며 쑥청을 담그시는 울어머님 같은 분에게는 그렇다.

인식의 밑바탕에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사람과의 관계가 인식의 근본이다.
금융자본에는 사람이 없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상품이 누구를 어떤 지경에 빠뜨리는지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 금융상품의 수익통계치 이외에는 보이지 않는다. 유해 식재료가 어떤 식품에 들어가는지 그 식품들을 누가 소비하는지 알 수 없다.

관계의 최고봉은 입장의 동일함이다.

머리 좋은 것이 마음 좋은 것만 못하고,
마음 좋은 것이 손 좋은 것만 못하고,
손 좋은 것이 발 좋은 것만 못하다.
관찰보다는 애정이
애정보다는 실천연대가
실천연대보다는 입장의 동일함이 더욱 중요하다.
입장의 동일함이 관계의 최고 형태다.

떡신자! 들어보셨나요? 보통 때는 신자가 아니다가 크리스마스나 초팔일이면 집회에 참석하는 사람을 부르는 말이다. 기천불(기독교,천주교,불교) 종합신자라고도 한다. 떡신자들은 서로 얼굴만 보아도 알아차리고, 멋쩍은 미소를 주고받는다. 자기와 처지가 비슷하다는 동류에서 오는 편안함으로 공감대가 형성된다.

어떤 사람을 잘 알기 위해서는 결정적인 전제가 있다. 바로 그 사람이 나를 잘 알아야 한다. 잘 안다는 것은 서로 관계가 있어야 된다. 관계가 없는 사람에게 자기를 정직하게 보여주지 않는다.
'네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겠느냐'는 유행가 가사도 있다. 대단히 철학적인 가사다. 명리학을 공부할 때도 유행가 가사를 많이 인용한다. 유행가 가사를 쓴 작사가들이 실은 진짜배기 철학자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결혼을 앞둔 여성에게 친구가 물었다.
"왜 그 남자를 선택했어?"
"그 사람과 함께 살면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야."
인간관계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하여 정곡을 찌르는 답변이란다.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나의 선택이 달랐을까? 결혼할 당시 스스로 생각해도 현명하지도 사람을 보는 남 다른 안목이 있지도 않았다. 그러니 나의 선택에 변함이 없을 것이라는 것은 순전히 내가 좋은 운을 타고났기 때문이라 할 수 밖에 없다.

같은 질문에 대부분의 친구들의 답변은 이랬다.
"능력 있고 나를 많이 사랑해주니까. 그 사람하고 있으면 편해."
인간학의 천박함을 다시 한 번 확인케 하는 말이라고 한다. 아. 미안하다, 친구들아. 내 말이 아니고 신영복님의 말씀이란다. 나도 배우자를 선택하는 기준은 그러해야한다고 생각했기에 말릴 재간은 없었지. 지금 우리의 결혼생활을 보면 좀 더 일찍 인간관계에 대한 공부가 필요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다.

관계와 인식의 문제에서 인간이 이 모든 과정의 시작이고 끝이다. 서로를 따뜻하게 해주는 관계, 깨닫게 해주고 키워주는 관계가 최고의 관계이다.

단 10페이지 내용을 정리하는데 얼마의 시간이 걸린 것인지. 물론 일을 하면서 짬짬이 적다보니 더 걸리기도 했지만 두고두고 새겨봄직한 내용들이 많아서다.
그리고 적다보니 책 내용의 인용과 나의 생각이 혼재한다. 주옥같은 내용이 많아 그대로 인용하자니 책을 카피하는 수준이 되겠고, 짧게 요약을 하자니 부분부분 발췌와 생각을 분리하기 어렵다. 독자분들이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주시길 바란다.

#신영복 #담론 #마지막강의 #떡신자 #관계와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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