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물생각

장미와 그대

맹물J 2023. 5. 24. 17:33

참 좋다. 이보다 더 좋은 카페가 있을까? 어느 때든 2~3시간 짬이 나면 조용한 카페에서 혼자 책을 읽거나 노트에 긁적긁적, 아니면 휴대용 키보드 두들기기를 좋아하는 나! 내가 카페에서 지불하는 돈은 엄밀하게 말하면 커피값이 아니라 자리값이다.  

간만에 몸도 마음도 여유로운 오늘! 마침 남편은 아침에 퇴근을 했다.
"우리 황산공원에 갈까요?"
"응, 좋지."
아침에 퇴근한 남편은 좀 쉬어야 하지만 공원에서 쉬면 된다고 한다. 우리집 근처 드넓은 황산공원은 우리가 지금의 집을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다. 차로 5분이내 도착할 수 있는 가까운 거리. 계절마다 아니 시시때때로 올 때 마다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두어달 전에는 벚꽃이 만발하다가 벚꽃이 절정을 지나니 튤립이 수줍은 듯 봉우리를 피운다. 곧이어 화창한 봄 날씨만큼이나 화사한 컬러를 색색깔로 뽐내며 만개한 튤립! 그 다음 방문한 황산공원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튤립의 화려함은 자취를 감춘다. 대신 공원의 산책길을 따라 흐르는 낙동강의 잔잔한 흐름이 넋을 잃고 물멍하게 만든다. 그리고 두어주만에 찾은 우리 부부에게 서프라이즈를 선사하고 싶었을까? 안개꽃에 둘러쌓인 양귀비가 한껏 자태를 뽐내고 있다. 올 때마다 감탄을 자아내게 되는 황홀경이다.

이런 평화롭고 아름다운 곳을, 평일이라 한산하기 까지 한 이 시간, 남편과 손잡고 두런 두런 얘기 나누며 산책하는 길이 행복의 길이요 우리 삶의 지향점이다.
"이렇게 속 편하고, 여유로와도 될까? 이 평화가 너무 낯설어요."
"이제 앞으로는 쭉~ 편안할 거요. 자꾸 일만 벌이지 마시오. 그저 보고싶은 책 보고, 공부하고 싶은 거 있으면 하고~"

1년전 이 맘때도 낙동강물은 지금처럼 유유히 흐르고, 그 때도 황산공원에는 튤립이 양귀비가 장미가 피고 지었으련만 그 때의 나는 지금의 내가 아니었다. 그랬다. 내가 평화롭지 못했던 건 그 누구 때문도 아닌 내 탓이었다. 나의 뇌 속에 살짝 바이러스를 담은 프로그램이 오작을 일으킨 것이다. 이제 겨우 그 바이러스를 치료했으니 이것 저것 새로운 프로그램을 무분별하게 깔지만 않으면 문제는 없을 것이다. 혹 새로운 프로그램을 깔고 싶으면 신중을 기해야 한다. 무엇보다 나는 남편에게 먼저 의견을 물어보게 될 것 같다. 언제나 남편이 더 현명한 선택을 해왔으므로.

저 멀리 분홍장미가 아름드리 피어있다. 가까이 다가가니 은은한 향이 오래 오래 발길을 머물게 한다. 보통 장미와는 다른 듯하여 검색해보니 핑크장미, 찔레장미라고 한다. 오늘은 여기가 당첨이다. 우리가 찾은 황산카페! 참 좋다. 이쁜 컬러와 자꾸 숨을 들이 마시고만 싶게 만드는 향내, 적당한 그늘과 따뜻한 햇살. 자리에 앉으면 눈앞에 펼쳐진 하얀 구름이 뭉게뭉게 핀 하늘과 아담한 산, 그 아래 옹기종기 모여있는 마을과 가까이 양귀비 꽃의 조화는 어떤 조경가가 꾸며 낼 수 있을까?

남편이 골라준 자리에 앉아 책을 본다. 카페이니 만큼 커피도 빠뜨릴 수 없다. 보온병에 담아온 뜨거운 물로 끓인 믹스커피 한잔! 아니 두잔! 평화의 향기, 충만함의 향기, 감사의 향기가 난다. 오늘이 코끼리 장가가는 날인가? 느닷없이 뚝뚝 떨어지는 빗방울에 얼른 책을 접고 일어섰다.
"우리에겐 준비된 것이 있지."
바로 큰우산을 꺼내 받쳐주는 남편!
감사하고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사람!
나에게 평화를 주는 유일한 사람♡

#황산공원의재발견 #양귀비 #찔레장미 #핑크장미
#황산카페 #안개와양귀비

반응형

'맹물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공짜!  (4) 2023.06.13
글쓰기  (6) 2023.06.10
효도 쿠폰  (0) 2023.05.10
일관성  (0) 2023.05.07
소금북  (6) 2023.0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