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관성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방법이나 태도 따위가 한결 같은 성질'이라고 한다. 보도 새퍼의 '돈'이라는 책을 보면서 우연히 발견한 일관성에 관한 단락이 책장을 넘기던 손을 멈추게 하고, 나의 눈을 고정시킨다.
모하메드 간디가 한 말씀이란다.
"일관성은 절대적 덕목이 아니다. 오늘 내가 어제와 다른 통찰을 했다면 오히려 방향을 바꾸는 것이 더 일관성이 있는 게 아닐까? 그러면 과거에 대해서는 일관성이 없어지겠지만, 진리에 대해서는 더 일관성이 있는 것이다. 일관성이란 자기가 인식한 진리를 따르는 것으로 지켜진다"
'옳거니 그렇지.'
무릎을 탁 치게 하는 말이다. 나의 고정관념에 일관성이란 긍정과 부정, 이분법으로 나누었을 때 절대적으로 긍정에 쏠린 단어다. 일관된 행동, 일관성이 있는 한결같은 사람! 얼마나 신뢰가는 가는 말인가. 그러나 한번 생각해보자.
세상은 조금 과장하여 빛의 속도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그만큼 유행의 변화속도도 빠르고, 과학 기술의 발달 속도는 적응하기가 벅찰 정도다. 새로운 정보는 한꺼번에 얼마나 많이 쏟아지는가. 하루에도 수천?권의 책이, 수만?건의 유튜브 영상이 새로 생성된다. 우리의 의도와 상관없이 편리한 기기(스마트폰 등)의 출현으로, 개인이 맞춤형으로 이런 정보를 습득하는 속도도 빨라졌다. 습득된 정보만큼 생각이 변화하고, 판단 기준도 바뀌기 마련이므로 선택이 달라지는 건 당연하다. 그런데도 너는 왜 일관성이 없냐고, 한결같지 않냐고 나무란다면 그것이 오히려 더 지탄받을 행동이지 않을까. 목표는 변함이 없다할지라도 행동하고 피드백하고 수정보완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방편이 바뀌는 것 역시 당연하다.
또 우리는 나이를 먹는 만큼 경험도 많아지고, 생각도 깊어진다. 정신적으로도 더 성숙해지고, 포용력도 넓어질 것을 기대하거나 기대 받는다. 혹자는 자랑스러운 듯 '나는 예나 지금이나 똑같아요.'라고 한다. 시간이 이렇게나 흘러 갔는데도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는 건 그만큼 반성이 없었다는 반증이다. 주변 환경이 바꼈는데 똑같은 것을 고집하고 있다면 지독히 융통성이 없거나 아집에 빠져 있거나 뭔가에 철저히 세뇌를 당한 것이다. 특히나 그릇된 것을 일관성 있게 밀어붙이고 있다면 자신도 이웃도 병들게하는 최악의 상황이다.
간디의 문장이 일관성에 대한 나의 고정관념에 균열을 일으키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언제나 책을 손에서 놓지 않으면 시의저절하게 인사이트를 주는 문장을 만나게 된다. 역시 책은 길이요, 양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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