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물생각

공짜!

맹물J 2023. 6. 13. 17:36

삶에서 가장 소중하고 값진 것들은 대부분 공짜다. 신선한 공기가 그렇고 맑은 강물이 그렇고 따뜻한 햇살이 그렇다. 물과 공기, 햇살의 하모니로 빚어진 들판의 풀꽃들과 아름드리 나무들이 그렇다.  아 요즘은 그렇지 않다고 항변할 분들도 있겠다. 그것도 맞는 말이다. 인간들의 욕심 때문에 누구나 누릴 수 있던 공짜들을 이제는 돈을 지불해야만 가능하도록 만들어 버렸다.수시로 날아드는 미세먼지 때문에 성능 좋은 공기청정기가 필요하고, 수돗물이 불안해 물도 사서 먹어야 한다. 오존층이 얇아진 탓일까? 요즘은 햇살이 더 강해져서 맨살을 바로 드러낼 수 없다. 자외선 차단제를 바르지 않고는 외출도 힘들다.

그래도 우리 부부같이 땅을 밟는 게 좋고, 나무와 풀내음, 시원한 바람을 맡아야 행복해지는 소박한 분들이라면 아직 희망은 있다. 잘 찾아보면 공짜 비스무리하게 누릴 수 있는 곳들도 반갑게 만나게 된다. 최근 우리부부가 즐겨 찾으며 만끽하고 있는 곳은 집 근처 황산공원이다.

날이 맑으면 맑은 대로,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운치가 있어 좋다. 맑은 날에는 팔각정 정자에 돗자리를 펼치고 앉는다. 나는 카페로 삼고 차를 마시며 책을 읽거나 블로그 글을 쓰고, 남편은 야간 근무후 피곤한 몸을 누이고 쉴 수 있어 좋다. 한 겨울에도 창문을 살짝 열어두고 자야 숙면을 취할 수 있는 남편은 공기에 아주 민감한 사람이다. 일본 다테야마산 설벽을 구경하러 갔다가 2400미터 고지를 넘으며 고산증에 힘들어하던 남편을 보며 보통 사람들보다 신선한 공기가 더 많이 필요한 사람들이란 걸 알았다. 그 이후 더 열심히 짬나는대로 집에 머물기보다는 황산공원을 찾았던 것 같다. 이제는 내가 더 좋아하는 장소가 되어가지만.

비가 오면 차 안에서 비소리를 들으며 창밖을 보고 커피를 마신다. 낙동강물이 유유히 흐르는 모습까지 보고 있으면 정말 이 공간 이 분위기 어떻게 돈으로 살 수 있을까 싶어 감탄과 감사가 절로 나온다. 세상 참 좋구나. 꼭 부자가 아니어도 행복할 수 있는 조건은 차고 넘친다. 내 눈에 비친 감동을 읽은 것일까. 남편이 한 마디 한다.
"자연은 누리는 자의 것이다."
명언이라고 칭찬을 해주었다. 붐비는 주말이 아닌 한산한 평일에 나올 수 있는 자유라 더 감사하다.


나는 특별한 존재가 아니다. 이 세상이라는 무대에 잠시 등장했다가 내가 맡은 역할을 충실히 하고 사라지는 배우와 같다.(세익스피어 희곡 <<좋으실대로>>에 비슷한 문구가 나온다고 한다) 내가 우월할 이유도 열등할 이유도 없다. 그저 나의 등장이 이 세상에, 다른 역할을 맡은 배우들에게 약간의 보탬이 된다면 족하다. 내가 즐겨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자연과 책은 참 닮았다. 사색하게 하고 지혜롭게 만들어준다는 점에서 말이다. 고민과 번뇌가 있는가? 그러면 자연과 책과 여백을 찾으라고 말하고 싶다.  여백에는 사색의 과정을 쏟아 놓아야 한다. 블로그에 글을 쓰는 지금의 나처럼. 그렇지 않으면 생각은 휘발성이 강해서 기껏 찾아놓은 솔루션도 잡아두지 못하고 놓치고 만다. 내가 찾은 자연, 황산공원의 정경은 100점 짜리다. 아니 실은 남편이 찾은 것이지만 누리는 자의 것이라고 했으니 내 것이나 마찬가지다. 공짜! 맘껏 누리며 살자.

#공짜 #자연 #누리는자의것 #황산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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