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물생각

취미

맹물J 2023. 2. 16. 21:48

"취미가 뭐에요?"
".... 음... 독서에요."
이런 사람만큼 재미 없는 사람도 없다. 그 재미 없는 사람이 나다. 사실 독서가 취미라 할 수도 없다. 그다지 책을 많이 읽지도 않았다. 기껏해야 소설이나 수필집을 몇권 읽는 정도로 취미라고 했으니 지금 생각하면 부끄럽기 짝이 없다. 단지 마땅히 언급할 취미가 없었기에 궁색한 답변을 했을 뿐이다. 그 때 누군가 최근에 무슨 책을 읽었냐, 즐겨 읽는 장르는 무엇이냐, 좋아하는 작가는 누구냐는 등 더 구체적인 질문을 했다면 대략난감한 상황이 펼쳐질뻔 했다.

그럼 난 아무런 취미도 없었을까?
가만히 생각해보니 나는 수학을 좋아한다. 남들이 다 좋아하는 음악 감상, 영화 감상, 그림 그리기, 악기 연주 이런 것들에는 젬병이다. 아 여기서 꼭 강조하고 싶은 말은 수학을 잘한다는 말은 결단코 아니다. 논리를 따라가는 것에 재미를 느낄 뿐이다. 미적분 문제를 풀면 영혼이 맑아진다는 사람도 있는데 나는 그 정도는 아니다. 그런 사람이 조금 이해가 되는 정도. 그냥 수학 문제를 푸는 것도 재밌고, 로직을 따라 증명을 하는 것도 재미있다. 밤을 세워 증명하라해도 잠을 쫓아가며 할 수는 있을 것 같다. 대학 전공 수학에는 단답형이나 객관식이 없다. 거의 모든 문제가 99% 증명 문제다. 예를 들면 '1 + 1 = 2 임을 증명하시오.' 이런 식이다. 처음엔 황당했지만 증명 방법을 익히고 나면 유사한 문제들을 푸는 재미가 있었다.


그런데, 취미라는 단어와 수학이라는 단어에 각기 다른 프레임을 씌워 둘은 결코 함께 할 수 없는 인연으로 생각했다. 취미는 머리를 쓰기보다 감각적이고, 가볍고, 쉬워야한다는 생각이었다. 수학은 머리를 쓰는 대표적인 과목이고, 학생이 시험을 위한 준비로 하는 공부거나 교사나 교수가 교수법 탐구나 연구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엄격한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랬기에 누군가 노후에 취미 생활 한두개는 있어야 한다거나 소일거리로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일로 삼아야한다는 말에 수학을 넣을 수가 없었다. 내가 아무리 수학을 좋아한다 한들 지금 와서 수학을 해서 돈을 벌 수 있겠냐는 생각이 먼저 들어와서다.

참 바보 같다. 취미 생활로 돈을 벌겠다는 생각부터가 어불성설이고, 돈이 안되어도 좋아서 하는 것이 취미 아니던가. 좋아서 하는 일인데 누구의 인정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그렇게 하다보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어 생산적인 일로 연결될 수도 있지 않겠는가.

나도 모르게 각인된 고정관념이 이렇게 무섭다. 남은 긴긴 세월 무엇을 할 것인가를 선택할 때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을 제외시키는 우를 범할 뻔하지 않았는가. 지난친 틀을 갖고 있으면 현명한 선택과는 거리가 멀다.

잠시 미국에 머무르던 시절 나에게 영어를 가르켜주시던 70대의 할머니 두분이 생각난다. 한 분은 취미로 퍼즐게임을 즐겨 하셨다. 또 한 분은 핫팬츠를 입고 테니스를 치셨다. 맥을 다루셨고, 4시간 거리에 있는 딸이 허리를 다쳐서 도와주러 간다며 직접 운전을 한다고 하셨다. 70대 할머니가 개인과외를? 핫팬츠에 테니스를? 컴퓨터를? 20여년전 그 모습은 나에게 충격이었고, 너무도 자유분방한 사고와 패션 스타일에 매료되었다. 할 수만 있다면 머물러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그런 나의 70대가 어렵지 않게 그려진다.

매사에 효율성과 효과성을 따지는 나!
내가 가진 것은 당연시하고, 하찮게만 여기는 나!
남의 것은 무조건 크게 높게 보는 나!

이제는 이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인지, 얼마나 나를 힘들게 하고, 헤매이게 했는지 안다. 이 나이에 늦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라는 말로 위로를 삼으려 한다. 어야든둥 내가 가야할 길이 기쁘게 보여서 행복하고 감사하다.

#취미 #수학 #수학도취미가될수있다
#해석학 #대학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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