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에 이어 상하북종합사회복지관 내 작은 도서관에서 <언젠가 우리가 같은 별을 바라본다면>을 마저 읽었다. 배우(차인표 님)가 쓴 소설이라기에 별 기대 없이 읽다가 점점 빠져드는 나를 본다.
위안부할머니에 관한 소설이란 걸 알고 읽기 시작한 터라 막연히 뻔한 스토리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의 예상과는 사뭇 다른 전개가 펼쳐진다. 말미에서는 눈물도 난다.
순이가 용이에게 말한다.
"난 네가 백호를 용서해 주면, 엄마 별을 볼 수 있게 될 것 같아."
"모르겠어. 용서를.... 어떻게 하는 건지."
"상대가 빌지도 않은 용서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
그렇다. 상대가 빌지도 않은 용서를 어떻게 한단 말인가. 그러나 할 수 있다. 그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 할 수 있다. 자신을,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쉽지 않지만 용서해야 한다. 이건 순전히 개인과 개인의 문제일 때로 국한된다고 생각한다. 사안이 국가대 국가로 확장되면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국가대 개인이라면? 그럴 수는 없다. 국가대 개인이란 있을 수 없다. 개인을 품는 국가가 대신해야 한다. 작가는 어떤 의도로 용서를 얘기하는지 모르겠다. 어떻게 천인공노할 만행을 용서하란건지. 가즈오란 인물을 등장시켜 그 만행이 모든 일본인의 뜻은 아니었다고 얘기하고 싶은 건가. 한국인 중에도 동족을 팔아 자신의 사리사욕만 챙기는 장포수가 있는 것처럼. 내가 너무 꼬아서 해석을 하는가.
옥스퍼드대학에서 필독서로 선정되었다는 책을 감히.
또 복선이라기엔 너무 직접적이고 친절한 설명을 곁들인 부분은 아쉽다. 독자에게 상상할 수 있는 아량을 베풀지 않은 것 같아서 말이다.
전체적으로 작가의 고운 심성이 그대로 작품 속에 묻어나는 것 같다. 특히 가즈오의 심경의 변화를 그린 대목이나 순이와 훌쩍이의 고운 천성이 곧 작가의 성품이 반영된 것이 아닌가 짐작해 본다. 한국의 역사를 잘 모르는 어린 학생들이나 외국인에게 쉽게 읽히는 소설을 통해 일본의 만행을 세계에 알리는 계기에 된 것에 큰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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