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맡겨진 소녀

맹물J 2024. 11. 18. 22:17

<맡겨진 소녀>는 클레어 키건의 긴 단편 소설이다. 작가가 '우물, 양동이, 물에 비친 소녀의 모습'이라는 이미지에서 착안하여 쓰인 소설이라고 한다. 1980년대 아일랜드 시골 지역을 배경으로 한다. 가난한 집에서 뱃속 아기를 포함하여 다섯 아이를 키우고, 집안일을 하며 들 일까지 하는 바쁜 엄마와 망나니 같고 거친 아빠의 어린 딸이 먼 친척집에서 맡겨진다. 가난하고 시끄럽고 어수선한 집에서 사랑을 받지 못한 소녀가 넉넉하고 여유롭고 부드럽고 자상하고 사랑이 넘치는 부부의 집에서 몇 달간을 지내다 자신의 집으로 돌아온다. 그 전체 과정이 마치 몇 장의 수채화를 보는 느낌이다.   

 

 

 

 

낯선 어른들을 만나고, 새로운 집에서 적응하면서 경험하는 사건들로 소녀가 겪는 내면의 변화를 아주 섬세하지만 노골적이지 않은 표현으로 묘사된 부분들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겠다.  

 

"남자들은 이런 식으로 사실은 아무 이야기도 나누지 않는다."

 

"아주머니가 내 옷을 보자 나도 아주머니의 눈을 통해서 내 얇은 면원피스와 먼지투성이 샌들을 본다."

 

"나도 저 밖에 나가서 일하고 싶다.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이 익숙하지 않아서 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 집은 다르다. 여기에는 여유가, 생각할 시간이 있다."

 

"우리 둘 다 말이 없다. 가끔 사람들이 행복하면 말을 안 하는 것처럼. 하지만 이 생각을 떠올리자마자 그 반대도 마찬가지임을 깨닫는다."

 

"물은 정말 시원하고 깨끗하다. 아빠가 떠난 맛, 아빠가 온 적도 없는 맛, 아빠가 가고 아무것도 남지 않은 맛이다."

 

"입 다물기 딱 좋은 기회를 놓쳐서 많은 것을 잃는 사람이 너무 많아."

 

"대화는 잠시 세사람 사이에서 여기저기 부딪치며 굴러간다."

 

이런 표현들이 어떻게 하면 나올 수 있을까? 읽으면 무슨 느낌인지 마음으로 충분히 느껴지는데 나라면 표현 방법을 몰라 엄청 헤매고 수렁으로 빠져버렸을지도 모르겠다. 한 문장 한 문장 곱씹고 싶은 부분들이 참 많다. 할 수 있다면 몽땅 외워버리고 싶다. 반복을 무지 싫어하는 나지만 무한 반복으로 읽고 싶은 책이다. 영어 원서로도 읽고 싶다. 두 번 읽고 나서 안 사실이지만 화자인 주인공의 이름이 없는 것도 신기하다. 이것도 이유가 있을까? 몇 번 더 읽고 독후감을 다시 써야 할 것 같다.

 

 

#맡겨진소녀 #말없는소녀 #클레어키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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