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물생각

버스 정류소 보일러

맹물J 2024. 11. 12. 06:58

"우리 동네 참 좋아요."
가장의 출근길을 따라 팔짱을 끼고 함께 걷는다. 예전에는 무시로 집 근처를 산책하겠다고 가장을 따라나서본 적이 없다. 집만 나오면 사방팔방 차들이 쌩쌩 다니는 거리를 걷고 싶진 않았다. 그러나 이사 후 요즘은 매일 1시간 산책을 하고 글을 쓰기로 마음을 먹은 지라 어느 때고 빈틈이 보이면 운동화를 꿰신는다.

"커피 한잔 사서 한 모금 맛 보여줄게요." 가장의 별명은 '허니보이'다. 달지 않은 커피는 옆에 사람이 마시면 따라 마시는 정도라 애써 찾아 마시는 나와는 다르다. 둘이서 한잔이면 넉넉하다. 마침 버스 정류소 맞은편에 컴포즈커피가 생겨서 오며 가며 테이크아웃 하기 딱 좋다. 뜨아 한 잔을 받아 나오니
"그러면 내가 보일러를 떼 주겠소."
"무슨 말?"

횡단보도를 건너 버스 정류소에 도착했다.
"앉아보시오. 따뜻하게 보일러 넣어놨소."
그랬다. 나만 몰랐다. 매일 버스와 지하철을 이용하는 가장과 달리 나는 얼마 전까지  대중교통을 거의 이용하지 않았다. '오잉? 우리나라가 이렇게 좋은 세상이 되었다고?' 너무 놀라웠다. 가만히 앉아있으니 엉덩이가 뜨거울 정도로 데워진다. 기다리던 버스가 와서 가장은 떠났다. 한 적한 시골 동네라 사람들도 별로 없다. 앉은자리도 따뜻하겠다 남은 커피를 마저 마시고 일어나기로 맘을 먹었다. 이렇게 살기 좋은 세상! 100억 부자가 아니라도 일찍 죽기는 아깝다.

상북면 행정복지센터 정류소
상북면 행정복지센터 정류소
왼쪽 끝 컴포즈커피

잠시 후에 아줌마 같은 할머니가 옆에 와 앉는다. 요즘 떡 삯이 너무 비싸다며 마치 알고 지내는 동네 이웃인양 말을 건넨다. 방금 쌀 5되를 떡집에 맡기고 왔단다. 잠시 자리를 떠시더니 바나나 한 손을 사 오셨다. 그래도 이 바나나 정도면 5000원이라도 괜찮은 것 같단다. 혼자 살면 한꺼번에 많이 못 먹으니까 모든 과일을 얼린다고 하신다. 밥 먹을 때 조금씩 잘라먹으면 밥도 잘 넘어간다고. 적당히 맞장구를 치며 호응했다. 처음 보는 낯선 사람에게 묻지도 않은 말씀을 저렇게 늘어놓으시는 분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

커피를 다 마셨다. "조심히 가세요." 꾸뻑 고개를 숙이며 일어섰다.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아쉬운 표정이다. 외로우신가? 왔던 길과 다른 길을 택해 계속 걷는다. 커피를 마셔서인지 화장실이 부른다. 근처 도서관에 들러 볼 일을 보고, 눈에 띄는 책도 하나 골랐다.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 <<아처>>다.  동화책마냥 그림도 많고 글밥은 적다. 집에 와서 읽어보니 아처는 활 쏘는 사람, 궁수다. 짧지만 삶에 대한 가르침이 있어 찬찬히 다시 읽어봐야 할 것 같다.

도서관을 거쳐 가보지 않았던 골목길도 구석구석 들어가 보고, 딸램이 다니는 학교인  양주중학교 정원도 거닐어본다.
  

양주중학교

그렇게 동네 한 바퀴를 돌아 집에 도착하니 칠천보를 걸었다. 시골의 한적함도 있고, 읍내처럼 적당히 발전되고 정돈된 동네. 행정복지센터, 국민체육관, 복지관, 병원, 식당, 마트, 미용실 등 생활에 필요한 웬만한 시설은 두루 갖추고 있는 상북면 석계리 우리 동네가 참 마음에 든다. 편리함과 여유로움이 적당히 버무려져 좋다. 이 좋은 세상, 이 좋은 자연에 감사가 절로 나온다.

#버스정류소 #난방 #상북면석계리 #양주중학교 #상북도서관 #상북면행정복지센터 #컴포즈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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