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비 오는 오후! 상북 도서관에 딸램이 읽고 싶어 하는 <죽이고 싶은 아이 2>를 대출하러 간다. 차로 갈까 하다가 운동부족이 심각한 상황이라 왕복 30분이라도 걸어야지 하는 맘으로 우산을 받쳐 쓰고 나섰다. 다행히 조용조용 내리는 비가 고맙다. 옷에 빗물이 튈 일은 없겠다. 길가 밭에는 온통 초록초록이다. 김장을 기다리는 알배기 배추, 무, 파, 깻잎 등. 올해는 배추가 흉년이라는데 이 밭 주인장은 어떻게 농사를 지었을까? 유난히 길고 지리했던 열대야의 한 여름을 어떻게 넘겼길래 이리도 배추가 실한 지. 마당에 텃밭을 일구시는 엄마는 올해는 우리 배추로 김장을 못 담글 수도 있겠다 하셨는데. 너무 뜨겁고 메마른 날이 길어서 아무리 물을 주어도 금세 말라버린다고.(어제는 오랜만에 친정에 갔더니 비가 너무 많이 와서 걱정이라 신다ㅠ)
길을 가다 풋고추를 따꺼나 깻잎을 따고 계신 분들을 만나면 '조금만 팔 수 있나요?' 묻고 싶어 진다. 그러나 주인장은 1년 내내 고생해서 밭 갈고 거름 뿌려 기름지게 땅 가꿨을 것이다. 씨를 뿌리고, 비지땀을 흘리며 풀도 뽑았겠지. 힘겹게 틔운 싹을 애지중지 거두어 이만큼 키워놓은 것을 길 가다 돈 몇 푼 주고 바꾸자고 하기는 너무 염치없다. 그럼에도 지날 때마다 탐이 난다. 가지런히 줄지어 자라는 초록이들 덕분에 눈이 호강하는 것만으로 만족해야지.
가장이 텃밭과 마당이 있는 전원생활을 그렇게 외쳐도 귓등으로 듣고 말았는데 어제는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엄마랑 마당에서 대파, 쪽파, 열무를 다듬어서 수돗가에서 바로 씻으니 이렇게 여유롭고 넉넉할 수가 없다. 어차피 사람 사는 것이 먹고사는 일인데. 평생 하루 세끼 챙겨 먹는 걸 안 할 수 없다면 내 손으로 길러서 건강하게 먹는 것도 좋겠다. 좀 더 나이가 들면 시간이 더 많이 생기겠지. '시간을 써서 돈을 벌고, 그 돈으로 밥을 사는 것이나 시간을 써서 바로 밥을 버는 것'이나 뭐가 다를까라는 단순한 발상이 전원생활을 꿈꾸게 한다.
#상북동네 #석계리 #텃밭 #전원생활 #배추 #김장배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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