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딸램과 단 둘이 보내는 토요일. 오전에 딸램은 뮤지컬부 공연 연습차 학교로, 엄마는 보강 수업으로 각자 시간을 보냈다. 점심식사도 각자 해결했다. 딸램은 학교에서 나눠준 샌드위치와 복숭아 아이스티, 나는 공부방 냉장고에 있는 사과와 하루 견과, 빈츠(과자)로 대신했다. 수업을 마치고 혼자만의 공간에서 아이들 선행 수업은 어떤 교재로 어떻게 할 것인지 궁리도 해보고, 최근 흐트러진 하루 루틴을 다시 점검하고, 필요한 책 주문 등으로 시간을 보내니 뭔가 어수선함이 정돈되는 느낌이다.
딸램은 약속대로 공부를 하는 것인지, 친구와 전화로 수다를 떠는 것인지 헛갈리지만 모른 척 믿어주는 것이 상책이다. 얼추 각자의 일이 끝날쯤 산책을 가기로 했다. 아니 붕어빵을 사 먹으러 가자고 합의를 봤다. 나의 목적은 종일 집에만 머무는 것이 운동부족을 야기하는 것 같아 산책을 하기 위함이고, 딸램은 며칠 전부터 붕어빵 파는 곳이 생겼다며 먹고 싶다고 했다. 동상이몽! 그러나 다정하게 셀카도 찍고 팔짱도 끼고 둘만의 산책이라 즐겁다. 마침 다이소를 가야 할 일도 생각났다. 집안 곳곳 놓아둘 숯을 담을 용기가 필요하다. 분명한 목적을 갖고 있으니 가는 길이 더 신난다.
아직도 익숙지 않은 우리 동네. 다이소 맞은편에 못 보던 분식집이 보인다. 간판도 새삥인 걸로 보아 새로 생긴 것 같다. 출입문 외에 길가에 서서 먹을 수 있도록 허리 높이의 문도 있다. 추운 겨울에 오며 가며 따끈한 오뎅이나 떡볶이 한 두 개 먹어도 좋겠다. 여기 상북은 깡시골은 아니지만 조금 더 벅적벅적 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 새 가게가 오픈하면 반갑다. 나에게는 별 소용이 닿지 않는 가게라도 가서 애용자가 되어주고 싶다. 오래오래 번창하시라고.
돌아오는 길 아까 찜해둔 붕어빵집에 들렀다. 멀리서는 문이 닫힌 것 같았는데 가까이 가니 주인장이 손님을 기다리며 앉아있다. 깔끔하게 정돈된 포장마차다. 팥 붕어빵은 왼쪽, 슈크림 붕어빵은 오른쪽에 나란히 놓여 있다. 생각보다는 붕어빵 크기가 작다. 2개 1000원이라고 적혀있다. 요즘 물가를 생각하면 이 크기에 이 개수에 이 가격은 해야겠다. 우리 입장에서도 첫 개시라 각각 맛을 봐야 한다며 종류별로 두 마리씩 주문했다.
"따뜻한 걸로 드릴까요?"
"네~"
바로 옆에는 계좌 번호가 적혀있다. 당연히 현금은 없기에 폰을 꺼내 송금했다. 붕어빵 네 마리가 담긴 작은 봉투! 딸램이 뜨겁다고 한다. 금방 구워낸 따뜻한 붕어빵이다. 딸램이 팥 붕어빵을 하나 꺼내 건네준다. 호호 불어가며 맛있게 먹는데 딸램이 말한다.
"엄마는 머리부터"
그새 나는 꼬리를 잡고 머리부터 먹고 있다. "벌써 머리부터 먹고 있네? 꼬리부터 먹으면 키가 크고, 머리부터 먹으면 머리가 좋아진데."
딸램은 꼬리부터 야무딱지게 먹는다.
그런데 봉투를 자세히 보니 '새황금식품', '마산, 창원, 울산, 양산, 전 지역 장사하실 분'이라는 말과 함께 '문의 전화번호'가 적혀있다. 어쩐지 정돈된 깔끔한 맛이라니. 언제 가도 똑같은 맛을 보장해 주는 프랜차이즈 같은 느낌에는 이유가 있었다.
옛날 붕어빵이 그립다. 붕어빵 집마다 모양도 맛도 비슷하지만 달랐다. 주인장의 외모나 성품이 다른 만큼 반죽의 되기도, 팥의 양도, 바싹한 정도도, 굽힌 정도도 다 달랐다. 그때가 더 인심도 좋고 따뜻했다는 생각이 든다.
시골에도 이제 동네 구멍가게는 다 사라지고 그 자리에 신식의 편의점이 들어와 있다. 또 한 때는 프랜차이즈 제과점이 우후죽순 늘어나면서 개인 빵집이 다 사라지게 하더니. 가장 늦게 변할 것 같은 거리의 먹거리 붕어빵, 군고구마, 떡볶이집도 이제 시스템화가 되어간다. 이용하는 손님도 현금이 없이 다니는 경우가 허다하니 재래시장이나 작은 가게들은 가는 곳마다 계좌번호를 큰 글씨로 써놨다. 나 또한 현금은 거의 갖고 다니지 않는다. 거스름돈을 받는 것도 번거롭다 보니 카드 아니면 계좌 송금이 편하다. 세상이 변하는 데 나는 절대로 변하지 않겠다고 똥고집을 부리며 독불장군으로 살 수는 없다. 단지 세상의 변화 속도에 나의 정신이 페이스를 맞추기 버거워함을 느낀다. 아쉬움이라는 표현 뒤로 숨지만 어쩌면 부적응자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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