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이란 사전적 의미로는 '몸을 움직여 일함'이다. 또 다른 의미로는 사람이 생활에 필요한 물자를 얻기 위하여 육체적 노력이나 정신적 노력을 들이는 행위이다. 흔히 노동이라 하면 전자처럼 몸, 육체적인 행위에 제한을 두는 경우가 많다. 정신적 노력을 들이는 행위에는 반드시 정신적 노동이라고 표현하니 여기서도 육체적 노동에 제한하여 생각해보고자 한다.
최근 노동, 몸을 움직여 일할 기회가 많았다. 먼저 짧은 기간 도서관 사서로 일을 했다. 여기 저기 흩어진 책을 모으고, 장르별로 분류하고, 배가(책을 분류해서 서가에 꽂는 행위)하는 일을 반복하는 일이다. 처음에는 분류 체계도 모르고, 배열 순서도 잘 몰라서 살짝 긴장감을 갖고 한다. 며칠만에 익숙해지니 단순반복 행위가 이어지면서 기계적인 움직임이 나온다. 한참을 집중해서 하고나면 시간은 훌쩍 지나가고, 나의 반복 행위의 의미가 무엇인가 생각해보게 된다.
어제, 그제는 떡집에서 1박 2일 동안 일을 했다. 떡시루에 강남콩배기, 완두콩배기를 적당히 뿌려주고, 곱게 빻아진 쌀가루를 골고루 편다. 설탕도 뿌리고, 모양대로 잘 분리되도록 칼금도 그어주며 설기떡을 찌기 위한 준비를 한다. 시루떡은 콩고물을 뿌리고, 쌀가루를 뿌린다. 그 위에 또 콩고물을 빈틈 없이 뿌리고 칼금을 긋는다. 포장을 위해서는 빈박스에 비닐을 펼치고 포개기를 반복한다. 완성된 떡은 결대로 잘라서 랩을 씌워 포장하고, 박스에 가지런히 담는다. 이런 행위를 옆 사람과 호흡을 맞춰가며 반복하다보면 잠시 허리 펴기도 힘들 때가 있다. 그야말로 아무 생각이 없어진다. 오로지 떡 일에만 집중한다. 아니 집중된다. 내 의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있으면 몸이 저절로 그에 맞게 움직인다. 잠은 2~3시간을 겨우 잔다. 잠시 짬이 나면 요플레와 윌을 마시는 게 먹는 것의 전부다. 식사시간도 아껴가며 일을 쳐내야 한다. 무념 무상이 절로 되면서 명상이 된다. 명상을 해야지하고 가부좌를 틀고 눈을 감으면 온갖 떠오르는 잡생각에 정신을 차릴 수 없다. 그런데 노동은 생각이 절로 끊어지고 집중될 수 밖에 없게 한다.
노동의 가치는 참 많다. 일한 결과가 바로바로 눈에 보이니 뿌듯하다. 나의 노동의 결과물을 누군가가 누릴 것이라 생각하면 흐뭇하다. 돈도 생긴다. 몸을 계속 움직이니 에너지를 쓰게 되고, 체지방도 빠질 것 같다. 본의 아니게 생각이 끊어지는 무념의 상태도 체험할 수 있다.
반면에 같은 행위의 반복이다보니 신체의 특정 부위가 아프다. 떡 일은 계속 서서하다보니 다리가 아프고 발도 아프다. 나중에는 허리까지 아파진다. 규칙적인 식사가 어렵다보니 본의 아니게 간편한 인스턴트를 많이 먹게 된다. 사서 일은 생각보다 무거운 책들을 나르다보니 손목 관절이 많이 상한다. 무릎을 굽혔다폈다해서 관절도 아프다고 한다. 시간이 지나면 이 일도 허리가 아프단다. 직업병이 생기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래서 여기 저기 허리 아프다는 사람이 그렇게 많은가 싶기도 하다. 무엇보다 '나'가 없다. 내가 보기엔 이것이 가장 큰 어려움인 것 같다. 일한 만큼 시간은 지나갔는데 정신적으로는 허탈감이 크다. 꼭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해도 되는 일이기에 그렇다. 사실 기계가 해도 될 일이다. 조금만 더 정교하게 기술이 뒷받침된다면.
생각해보면 본능적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싶은 것이 인간인가 보다. 거기에 타인의 인정까지 더해지면 금상첨화다. 인간이 그토록 창조적인 일에 목말라하는 이유도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는 다른 형태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다른 동물과 달리 인간이 사유할 수 있다는 건 엄청난 신의 선물이다. 뒤늦게 노동을 하며 얻은 큰 깨달음에 감사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