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물생각

영웅

맹물J 2023. 1. 24. 23:37

딸램이 선생님도 친구들도 추천한 영화라며 '영웅'을 꼭 보고싶다고 한다. 양산에서는 상영관이 없다. 그나마 가장 가까운 화명동 CGV에 조조가 있어 다행이다. 딸램이 얘기한다.

"엄마, 너무 슬퍼서 다들 운데..."

평소 내 가방에는 손수건도 화장지도 한장 없는 경우가 많다. 무심코 영화 관람을 하거나 강의를 듣는 중에 예상치 못한 슬픈 장면이나 감동으로 인한 눈물에 난감한 경험이 한두번이 아니다. 슬픈 영화를 볼 때 휴지나 손수건은 필수템이다. 울 딸램에게는 집에서나 극장에서나 영화를 볼 때 필수템이 하나 더 있다. 엄마가 만든 팝콘. 그래서 울집에는 늘 팝콘옥수수가 있다. 그런데 최근 쟁여둔 팝콘옥수수로 튀겨주고 봉지의 끝을 봤나보다. 아쉽게도 텅장이 아니라 텅봉이다. 대신 전병 2봉지를 챙겨 출발. 

 

영화관에 도착하고보니 휴지 챙기는 것을 깜빡했다. 어쩔 수 없이 화장실에 들러 둘둘 말아서 가방에 챙겼다. E06, 07 좌석 번호를 찾아 앉았다. 늦게 입장하는 분들을 위해 10분 늦게 시작한다는 안내메세지를 티켓을 예약하면서 보았다. 실제 예약시간보다 10분간 더 광고를 보면서 공공연히 코리언타임을 당연시 하는 것 같아 씁쓸하다. 

 

어쨌든 '영웅'은 시작되었다. 아주 웅장하게 무겁게. 단지동맹. 안중근을 포함 12인의 독립투사들이 왼손 네째 손가락 한마디를 자르고 혈서를 써서 맹세한다. '대한독립!' 

뮤지컬 형식으로 진행되어 중요한 대목마다 그 순간의 감정을 깊게 새기게 한다. 슬픔, 아픔, 미움, 분노, 기쁨 등을 음미할 시간이 길게 주어져 감정이 더욱 증폭된다. 

안중근 의사가 이토히로부미를 총살하고, 사형 선고를 받는다. 그 과정에 '누가 죄인인가?' OST는 강렬하게 다가온다.

"누가 죄인인가? 누가 죄인인가? 누가 죄인인가?" 반복되는 가사과 리듬은 함께 울분으로 목청껏 따라 부르고싶은 충동을 느끼게 한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정의를 내릴 수 있을까? 역시 인간은 밥만으로 살 수 없다. 어머님이 계시고, 아내와 아이 셋이 있는 가장이라면, 특히나 1900년대 초. 그 때의 가장이라면 부지런히 노동하여 처자식을 굶기지 않고 먹여살릴 궁리를 하는 게 보통의 인간된 도리 아니겠는가. 그러나 안중근은 그런 인간의 도리보다는 대의, 나라를 구하겠다는 대의명분에 목숨까지 걸지 않았는가. 무엇이 그런 남다른 선택을 하게 했을까?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 보통의 어머니들이 절대로 흉내낼 수 없는 고매한 정신의 소유자인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정신세계가 남달라서 일까? 그렇게 치면 동생 정근, 공근도 같은 어머니이지 않은가. 무엇이 똑같은 환경에서도 다르게 생각하게 하고 다르게 행동하게 하는지 궁금해진다.

 

사실 이런 건 나의 사적인 궁금증일 뿐이니 중요치 않다. 영화를 보면서 참 감사했다. '영웅'같은 영화가 더 많이 더 잘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그래서 개봉하는 영화마다 흥행을 했으면 좋겠다. 이렇게 기쁘게 감동으로 바른 역사를 우리의 아이들이 알아갔으면 좋겠다. 

 

안중근 의사는 자신이 죽고나면 그 뼈를 하얼빈 유역에 묻었다가 우리 국권이 회복된 후 고국으로 옮겨달라고 유언했다. 그러나 마지막에 자막에 "안중근의 유해는 아직 고국에 돌아오지 못했다"는 더욱 분통 터지게 한다. 파렴치하고 반성할 줄 모르는 일본인에 대한 잠들어있던 반일감정이 다시금 솟구치게 한다. 

 

딸램은 영화관을 나오면서 묻는다. 

"엄마, 어땠어? 별점 몇점?"

"4.5점"

"아쉬운 점은 뭐야?"

"진주 좋아하는 남자애 있잖아. 진주가 총맞고 쓰러졌을 때 끌어안고 울면서 눈물이 펑펑 쏟아져야 할 것같은데.. 눈물은 찔끔 나오고 우리 소리만 큰 게 아쉽네."

"맞아. 눈물이 쪼끔 흐르고 말았어."

 

돌아오는 차 안에서 딸램과 이런 저런 감상을 얘기했다. 아직 딸램은 슬펐다는 것 이상으로의 세심한 관찰이나 표현이 없다. 이 아이에게 더 많은 역사교육이 필요함을 절실히 느낀다. 나 스스로 역사에는 젬병이라 함께 공부해 나가야할 일이 수북하다. 역시 엄마 역할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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