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왜 도구의 인간이라 하는지 알겠다. 며칠 전 주문한 노트북이 도착했다. 휴대폰과 휴대용 키보드로 블로그에 글도 쓰고, 네이버 메모장에 메모도 하고, 유튜브 시청, 쇼핑 등 온갖 것들을 하고 있었다. 엄지 2개로 타이핑을 하다가 피스넷 키보드가 생겼을 때 신세계를 만난 기분이었다. 어디서든 테이블만 있으면 펼치고 타이핑을 자유롭게 할 수 있고, 자그마한 것이 휴대하기도 편리하다. 그렇게 아끼던 키보드가 한 달 전쯤 이상이 생겼다. 엔터키와 shift키가 세차게 내리치듯 두드려야 겨우 먹히는 기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이물질이 낀 것인가 싶어 구석구석 닦아도 보았다. 한 지인이 "키보드는 한 키씩 분리해서 닦아 내기도 하잖아요."라고 한다. 그 말에 일반 PC 키보드처럼 그럴 줄 알고 살짝 떼어보았다. 아뿔싸! 왠지 심상치 않은 조짐이다. 가는 선으로 된 플라스틱 두 개가 고리처럼 엇갈려 걸려있다. 손을 대면 깨질 듯 약하다. 이물질도 없어서 다시 끼우려니 원상복귀를 할 수 없다.
검색해 보니 피스넷 키보드는 삼지아이티에 전화를 해서 AS를 받으란다. 서울 번호다. 전화를 해보니 보상교환을 받으란다. 수리를 하려면 키 하나가 고장이라도 보드 전체를 갈아 끼운단다. 그러면 수리비용이나 새 제품 가격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고. 리퍼제품은 2만 4천 원, 새 제품은 3만 4천 원. 택배비까지 포함하니 3만 원, 4만 원이다. 무상교환 기간이 1년인데 아쉽게도 1년을 살짝 넘겼다. 구입한 지 1년밖에 되지 않은 제품을 새로 구입해야 하다니. 매년 바꾸는 소모품 정도로 생각해야 하나보다. 그렇게 불편한 마음으로 고민을 했다. AS기사님의 리퍼제품이라는 말에 힌트를 얻었다. 노트북도 그런 게 있을까? 블로그 글 쓰고, 문서 편집 정도 수준이면 적당한 노트북도 크게 비싸지 않을 거라는 야무진 생각을 해낸다.
그리하여 지금 LG gram 노트북으로 글을 쓰게 되었다는 사실. 스마트폰으로는 아무래도 편집이 자유롭지 못해서 갑갑한 구석이 많았다. 노트북이나 PC는 대학시절부터 쓰던 것들이니 얼마나 자유로운가. 검색도, 이미지 캡처도 쉽고, 원하는 위치에 원하는 모양으로 끼워넣기도 수월하다. 생각의 자유마저 생긴 것 같다. 집에 하나 있는 PC는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사용하지 않았다. 나만의 것이 아니다 보니 앉아서 편안하게 집중이 되지 않는다. 이제 도구의 자유를 만끽하게 되었다.
현생 인류의 조상인 슬기로운 사람 호모 사피엔스의 출현이 10만 년 전인데 도구의 인간 호모 하빌로스는 200만 년 전 인류다. 인류는 사리 분별을 하기 이전부터 본능적으로 생존을 위해 도구의 중요성을 알았다는 얘기다. 도구의 중요성! 두 말해 무엇하겠는가. 무딘 칼로 사시미를 뜨라는 임무를 받았다고 생각해 보라. 열심히 열심히 노력한다고 맛난 회가 뜨질까? 칼을 든 사람의 노련미도 필요하겠지만 무엇보다 사시미칼이 있어야 한다. 물론 감자채를 쓰는데 사시미칼까지는 필요치 않다. 오히려 잘못 다루면 화를 자초할 뿐이다. 뭔가 일을 함에 있어 적당한 도구는 필요조건이다. 블로그 글 쓰기에 적당한 도구는 성능 무난한 노트북이면 족하다. 매일 매일 1편씩 글을 올리는 성실함이면 충분조건까지 채우는 것이 아닐까. 필요충분조건을 채울 수 있게 도움주신 가장님 감사해요.
#도구의인간 #피스넷키보드 #노트북 #필요조건 #충분조건
'맹물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글쓰기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3) | 2024.10.07 |
---|---|
연예인 걱정은 하는 게 아니다. (14) | 2024.10.05 |
알뜰폰 셀프 개통 (0) | 2024.03.08 |
왜 글을 쓰려하는가 (0) | 2024.03.07 |
인생삼무(人生三無) (0) | 2024.03.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