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매일 올라오는 준이선배님의 글에서 '나는 왜 글을 쓰려하는가?'라는 질문을 만난다.
"기분이 좋잖아요?"
라는 답이 절로 나온다.
그래, 글을 쓰면 무엇보다 기분이 좋아진다. 흔히 글쓰기를 배설에 비유한다. 적절한 표현이라 생각한다. 우리 모두 배설의 기쁨, 그 쾌감을 알지 않는가. 특히 꽉 막힌 심한 변비를 앓다가 한 번에 쏟아내는 후련함. 억지로 짜내지 않아도 변의를 살짝 느꼈을 때 변기에 앉음과 동시에 부드럽게 빠져나올 때의 그 쾌감이란. 좌식 변기이기에 가능한 일이지만 살짝 고개 숙여 배설물을 바라봤을 때 그 빛깔이 황금색에 적당한 굵기라면. 괜히 뿌듯함마저 느낀다. 글감을 하나 정했을 뿐인데 마치 물 흐르듯 쉽게 떠오르는 생각들. 받아 적기만 했는데 꽤나 마음에 드는 글이 완성된 것처럼 말이다. 이 맛에 글을 쓰고 싶다. 당연히 글을 쓰지 못한 날은 노폐물이 몸속에 쌓여가는 것처럼 찝찝하다. 마음이 무겁다.
또 뇌가 맑아지고 가벼워진다는 장점도 있다. 잊지 않기 위해 꼭 기억하려 애쓰는 에너지를 쓰지 않아도 된다. 거실에 너저분하게 늘려있는 책들과 외투, 쇼핑백, 개켜야 할 빨래들, 그 사이사이 보이는 먼지와 머리카락들. 보기만 해도 갑갑하다. 책은 책꽂이에, 외투는 옷장에, 쇼핑백은 신발장 수납공간에, 빨래들은 개켜서 각자의 서랍 속으로, 나머지는 청소기로 싹 밀어버렸을 때의 개운함. 이것이 하루를 돌아보고 글을 쓰고 난 후의 기분이지 않을까.
기분을 업 시키는 것보다 더 중요한 글쓰기의 기능이 있다. 자료의 누적이다. 역사의 기록이다. 나의 발자취, 생각의 발자취를 생생히 남길 수 있다. 많은 세월이 흐르고 과거 어느 시점을 돌아봤을 때 기억의 한계와 왜곡을 보충해 줄 수 있는 확실한 수단이 된다.
얼마 전 함께 여행을 다니시던 시이모님께서 세상을 떠나셨다. 양가 부모님도 다 살아계시고, 아직 가까운 분이 돌아가신 경험이 없다. 이모님의 장례절차를 보니 장례식장에서 이틀을 보내시고, 화장터에서 화장하고 나니 남는 것은 함에 담긴 뼈가루뿐이다. 그 마저도 장수암에서 운영하는 장지에 도착하니 흙으로 빨리 돌아가게 하기 위함이라며 함지를 빼버리고 평평한 묘지에 뼈가루만 묻는다. 이제 더 이상의 이모님의 형상은 어디에도 없다. 단지 자녀들의 기억과 함께 여행하며 보고, 웃고, 먹고 했던 우리 가족의 기억 속에만 존재할 뿐이다. 팔십 평생 살아온 흔적이 사라지고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셨다. 비록 고달픈 삶이었다 하더라도 이모님도 남기고 싶은 뭔가가 있으셨을 텐데.
글은 나를 평생 살아있게 만든다. 죽어서도 살 수 있게. 혹자는 물을 수 있겠다. 그대의 삶이 뭐 그리 대단해서 꼭 흔적을 남기려 하느냐고. 사실 적절한 답을 못 찾겠다. 인생에 정답이 있는 줄만 알 때는 내가 죽어도 살아있어야 할 이유를 만드는 게 삶인 줄 알았다. 그것이 아님을 알고 있는 지금 꼭 유용성 때문이 아니라 그냥 남기고 싶다. 조선왕조실록에 좋고 교훈적인 기록만 있는 것이 아니듯이. 인간 삶의 수십억 모습 중 하나로 기억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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