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물생각

나눔의 자세

맹물J 2024. 2. 6. 10:03

5월경 이사 계획이 있다. 세 식구 살림살이를 둘러보니 반드시 버려야 할 것,  철 지난 것, 꼭 필요하지 않으나 언젠가 필요할 것 같아 버리지 못한 것들이 적지 않다.

우선 딸램 방부터 둘러본다. 이사할 때나 쓰는 큰 봉투가 넘치도록 모아둔 인형들,  책들(why, 솔루토이 등), 패딩, 코트, 에어보드, 권투 글러브 등등. 정리해야 할 것들이 끝없이 나온다. 무료 나눔을 하면 인형들이 아무한테나 가서 방치될 수 있으니 적은 금액이라도 받고 팔았으면 좋겠단다. 그래야 가져간 인형들이 소중하게 다뤄질 거라는 딸램의 야무진 생각이다. 겸사겸사 본인 용돈도 생기니 일석이조. 나름 논리는 타당했으나 이런저런 번거로운 일들을 생각하니 나눔이 편할 것 같았다.  


우선 울 아파트 게시판에 무료 나눔을 올렸더니 바로바로 알림이 온다. 차례차례 가져가겠다는 분들께 답장을 하고 대문 앞에 내어 놓았다. 아파트 게시판에서 인기를 얻지 못하는 것들은 당근마켓에 무료 나눔으로 올렸더니 거의 빛의 속도로 동시다발로 연락이 온다. 어쨌든 조금이라도 먼저 연락이 온 분에게 당첨기회를 선사하고, 전달할 방법을 궁리한다. 10초도 지나지 않아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듯이 저녁 6시경에 챗을 하고 방문하겠단다.  그리고 그 시간이 되어서는 사정상 다음날 오겠다며 어제 모두 챙겨갔다.


총 5명에게 나눔을 했다. 물건을 챙겨가는 분들의 자세는 제 각각 달랐다. 한 분은 인형을 가져가시고 바닥에 깔아 둔 매트를 얌전히 접어두고 물티슈 1팩을 문에 걸어뒀다. 한 분은 신문지는 그대로 둔 채 책만 사라지고, 종량제 10리터 봉투 1장을 놓고 갔다.  또 한 분은 오겠다는 날에는 메시지도 없이 다음 날 새벽에 부스럭부스럭 소리가 나더니 책은 가져가고 신문지는 그대로 널브러져 있다. 다른 한 분도 물건만 거두어 가시고 신문지는 그대로. 마지막으로 권투 글러브를 가져가신 분이 답이 있었다.
"잘 가져갑니다 ㅎㅎㅎ 글러브 너무 좋네요. 정말 약소하지만 양파과자 걸어놓아요."
마음이 따뜻해진다.

오렌지족과 동시대를 산 우리 부부는 낯섦을 느낀다. 물론 무료 나눔이니 뭔가 대가를 기대한 건 아니다. 받기로 한 물건만 받으면 뒷 일은 내 볼일 아니라는 듯한 뒷마무리와 잘 가져갔다는 댓글 하나 없는 그들을 보며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MZ세대의 풍토가 이러하니 우리가 이해를 하고 적응해야 한다는 가장의 말.  이것이 그들이 말하는 쿨한 것인가? 세대가 달라졌다고 사람이 느끼는 감정마저 달라졌을까? 실은 나도 곱살스럽게 주위를 잘 챙기거나 세심한 성격이 못되어 다른 사람을 대하는 자세도 너그러울 줄 알았다. 그런 내가 소위 꼰대, 라떼짓을 하는 것인가. 인간미가 사라지는 세상! 오늘 유달리 커피 맛이 쓰다.

#나눔 #무료나눔 #당근마켓 #아파트게시판 #예의 #오가는정 #라떼 #꼰대 #쿨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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