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물생각

책과 장미와 피칸파이

맹물J 2024. 1. 29. 18:07

딱히 글감이 생각나지 않는 날이다. 뭔가 단서가 있을까 해서 폰의 갤러리를 열었다. '아 이 사진. 정말 의미 있고 중요한 사진인데' 놓칠 뻔했다.

2024년 1월 10일. 우리 집 가장의 생일날이다. 우리는 아직 아끼고 절약해야 하는 시기라는 걸 알기에 기념일도 의미는 두되 간소하게 보내기로 했다. 그래도 생일인데 케이크는 있어야 되지 않겠냐며 딸램이 레시피북을 열심히 뒤져보더니 고른 메뉴가  피칸파이다. 이 정도는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서 이런저런 재료들을 챙겨 보았다. 다행히 집에 다 있는 재료들이다. 달고 바삭하고 고소한 맛을 분명 가장도 좋아할 것이다.

책과 케익과 피칸파이

여느 아침처럼 식사를 하고 가장은 출근했다. 낮에 딸램과 합작으로 피칸파이를 만들었다. 어릴 때부터 연필만 잡으면 하트를 그리는 딸이다. 길을 걷다 고인 물웅덩이에서 하트를 찾고, 하늘을 보고 구름 속에서도 하트를 찾고, 인형의 귀에서 하트를, 세상 모든 보이는 곳곳에서 숨은 그림 찾기를 하듯 하트를 찾아내는 딸램이 파이 위에 피칸하트를 새겼다. 생일초를 찾아 서랍장을 뒤졌다. 일반초는 없고 숫자초가 있다. 84세 할아버지 생신에 쓰고 남은 거라 '8', '4'가 없다. 다행히 소위 '윤나이'라는 걸 쓰는 세상이라 가장의 생일에는 '5', '3'를 사용해도 되어 감사할 일이다.

저녁에는 가장의 생일임을 알리지 않고 지인 한 분을 초대해서 감바스를 해 먹기로 했다. 그러니 초를 미리 꽂아서 사진으로 남겨두기로 했다. 우리 집에는 1년 내내 꽃병이 쓰일 날이 별로 없다. 눈을 즐겁게 하겠다고 부지런을 떠는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 꽃을 사지도 않을뿐더러 어쩌다 꽃선물을 받아도 잘 케어하지 못한다. 그런데 이 날은 마침 며칠 전 딸램이 여성이 됨을 축하는 의미로 아빠가 선물한 빨간 장미가 있다. 지저분한 배경은 독서대로 가리니 안성맞춤이다. 이때 펼쳐둔 책이 아마도 '총균쇠'? 독서모임 선정도서라는 의무감이 없었다면 결코 읽기 쉽지 않은 책이다.

어찌어찌 우리 집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의 53번째 생일을 기념할 수 있는 사진 한 장은 건졌다. 가장은 모녀로부터 카톡으로 축하 메시지와 함께 생일케이크를 전달받았고, 파이는 저녁에 후식으로 맛나게 먹었다는 후문이다.  

***어제 글 <모닝카페>의 정답을 공개합니다
문제1 : 5번
문제2 : 5번
문제3 : 2번
문제4 : 1번
해석이 필요하신 분은 댓글 달아주세요^^

#가장의생일 #남편생일 #피칸파이 #윤나이 #53세 #장미 #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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