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만 들어도 왠지 재미있을 것같다. 근데 나는 왜 이 책이 소설책이라 전해듣고 빌리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어찌 되었건 이 책 덕분에 하루를 신나게, 뿌듯하게 보낼 수 있어 좋았다. 며칠전 남편과 황산공원 산책길에 너무나 마음에 드는 정자처럼 지붕도 있는 평상자리를 발견했다. 하루 통으로 여유로운 금요일. 책 두권을 들고 황산북카페로 향했다. 이 카페이름은 맹물 버전으로 내가 지은 것이다. 집에서 돗자리, 책상 대용 아이스박스, 시나몬찰케이크와 토마토, 사과를 담은 간단한 도시락, 언제나 한 몸인 스마트폰과 휴대용 키보드를 트렁크에 싣고 나왔다. 평상에 돗자리를 깔고, 내 집 앞마당인양 평상 위에 세팅을 하고나니 산들산들 바람도 좋고, 초록초록 풀내음에도 취한다.
한권은 다 읽었지만 정리가 남았기에 들고온 책이고, <나는 프랑스 책벌레와 결혼했다>는 처음부터 읽을 책이다. 근데 제목에 끌려 이 책부터 집어드는 바람에 망했다. 정리를 하고 반납이 시급한 책을 결국 정리를 못하고 말았으니. 소설인줄 착각한 이주영(내 남편 아님 주의)의 에세이는 재미와 감동과 새로운 앎과 깨달음, 힐링이 공존한다. 이 책과 바꾼 하루가 아깝지 않다.
한국인 저자는 생활에 불편을 초래할 정도의 지독한 책벌레에 생활인으로는 최저점, 오지랖이라 평하는 기사도 정신의 소유자인 프랑스인 남편을 두고 있다. 책표지에는 살짝 기울어진 모양새로 자칭 '한국 욕쟁이 부인이 미치지 않기 위해 쓴 남편 보고서'라고 씌어있다. 이 문구가 책 내용을 고스란히 담고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이 수준을 넘어선 남편 에두아르만의 매력을 잘 묘사해놓았다.
저자의 남편인 에두아르의 행동을 통해 알게된 가장 큰 문화적 자극이자 나의 핸디캡인 살롱 문화에 대해 말하고 싶다. 저자는 평소에도 늘 현관입구를 갖가지 책들과 소지품들로 너저분하게 어지럽히는 남편이 손님을 초대하기 전 날에는 더 더욱 그 증상이 심해진다고 한다. 마구 욕을 쏟다내고 싶을 만큼. 그러나 에두아르의 변명은 '아~' 탄성을 자아내게 만든다. 이유인 즉슨 초대한 손님의 관심 분야에 맞는 책을 늘어놓으면 이야깃거리가 풍성해진다는 것이다. 즐거워야 할 시간에 이야기 소재가 궁해지는 것은 손님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한다. 누군가를 초대하는 것은 먹고 마시기 위함이 아니라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함께 하기 위함이다. 이것이 말로만 듣던 프랑스의 살롱 문화였구나.
17세기 랑부예 후작부인이 각계의 인사를 초대해 그녀의 거실(살롱)에서 만찬을 즐기며 예술과 철학, 역사를 주제로 담화를 나눈 것을 시작으로 프랑스의 개인 살롱은 18세기를 거치며 문화로 자리 잡았다. 이것이 프랑스가 문화강국으로 자리할 수 있는 밑천이 되었다고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우리내와는 참 다르다. 우리는 우선 손님이 온다고하면 평소 늘어놓았던 책들도 책장에 줄을 맞춰 꽂아놓고, 정리정돈과 청소부터 하게 된다. 그 다음으로 해야할 일은 맛있는 음식을 넉넉히 준비하는 것이다. 음식이 모자라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하여 충분히 먹고도 남아야 마음이 놓인다. 그렇게 청소와 음식에 혼을 쏟고 나면 오시는 분의 취향을 고려한 이야기 주제까지 고민할 여력이 없다. 옛날 먹고 살기 힘들 때야 이런 문화가 반갑겠지만 요즘은 어디 그런가. 어딜 가나 먹거리가 부족한 경우는 없다. 그럼에도 이런 문화로의 발전은 아직 이루지 못한 것 같아 많이 아쉽다. 아 나만 그런 것인가. 저자는 프랑스의 사교문화, 살롱문화와 비슷한 우리나라의 사랑방 문화를 이야기 한다.
우리 선조들은 사랑방으로 손님을 초대해 다과를 접대하며 학문과 예술에 대한 담소를 나누었다고 하는데 사대부집안의 남자들이나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다. 지금은 신분제도도 없고, 대다수의 사람들이 옛날의 사대부집안 만큼 삶의 질이 올라가 있는 상태지만 사교 문화에서 만큼은 글쎄다. 인간다운 삶을 위해 물질적인 풍요는 지금도 충분하다고 본다. 부족한 것은 경제 발전이 아니라 의식 수준과 문화 수준이 아닐까. 에드아르식 삶의 방식이 한 없이 부럽다.
또 나에게 자극이 되었던 것은 에두아르 부모님의 양육방식이다. 아이가 스스로 관심을 보일때까지 관찰하고 기다려주는 마음이 쉽지 않다. 일방적으로 부모는 아이가 갈 길을 정해놓고 밀어 넣기 바쁘다. 잠시 한눈이라도 팔라치면 너를 위한 것이라는 미명하에 압박을 가하게 된다. 이런 행동이 아이의 행복과는 거리가 있음에도 무지한 부모는 아니 나는 '엄마가 먼저 살아 봤잖아. 이게 맞아.' 라고 한다. 내가 낳았지만 분명 아이는 나와 다른 성격, 다른 기질, 다른 장점을 가지고 있다. 충분히 스스로의 길을 찾아갈 힘도 있다. 엄마가 막지만 않으면 된다는 반성을 하게 된다.
부모는 아이를 관찰하면서 아이가 관심을 보이거나 생길 수도 있겠다고 생각되는 순간, 기회를 놓치지 않고 아이의 관심거리와 관련된 책이나 물건을 사주어야 한다 아이가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을 부모 마음대로 먼저 제안하거나 강요하지 않아야 한다.
에두아르의 또 다른 매력은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하고, 남들은 다 읽은 책을 읽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는 당당한 자신감이다. 저자의 말처럼 아는 게 많아질수록 모르는 것이 늘어나는 법이다. 그는 이미 엄청난 양의 독서로 깨달은 것이다. 세상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책과 작가들이 있고, 평생을 다해도 그들의 존재를 다 알 수 없기에 무언가를 모르는 사람을 무시할 수 없음은 당연하다. 그걸 인정하니 자유로워지고 당당해진 것일게다.
또 한 가지 부러운 것은 프랑스는 일년에 방학이 5번이나 된다는 것이다. 중고생 문학교사인 그는 그 때마다 여행을 다닌단다. 짧게 3번 길게 2번. 1년에 다섯번이나 여행을 다니는 삶은 얼마나 풍요로울 것인가. 책과 여행을 통해 꽉 채워진 내면의 풍요로움이 만나는 사람마다 얼마나 얘기를 나누고 싶게 만들겠는가. 우리가 책에서 배운 지식과 지혜를 실천하기 못하는 이유는 책을 가슴으로 읽지 못하고 머리로만 이해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반면 여행은 가슴으로 마음으로 책을 읽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최근 일본 가족 여행을 다녀온 후 계속 미루기만 했던 어학공부를 실천하게 된 것처럼 마음으로 읽는 여행은 머리로 읽는 책보다 더 강력한 행동력을 선물한다.
저자는 스스로 내면을 풍요롭게 하는 삶이 성공적이 삶이라고 말한다. 나도 깊이 동감한다. 이 번 생을 무대로 나도 스스로의 내면을 풍요롭게 하는 일에 몰두하는 배우의 역할을 해보고 싶다.
마지막으로 저자의 '베스트 셀러'와 '신조어'에 대한 견해도 인상적이다. 일반적으로 에두아르처럼 특별히 학식이 높거나 학문의 깊이가 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중에는 베스트 셀러를 시피보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베스트 셀러는 문학성의 측면이 아니라 소통의 역할로 본다면 이만한 것이 없다는 것이다. 인기 드라마나 영화가 그런 것처럼 말이다. 프랑스의 살롱 문화가 한 없이 부러운 입장에서 지인을 초대한 자리에 드라마나 연예인 얘기만 오가는 것보다는 책 얘기가 더 있어빌리티 하지 않은가.
신조어의 남발을 우려하는 기성세대에게도 한 마디 한다. 신조어는 시대의 트렌드다. 사회, 개인, 근대, 경제, 권리, 자유 같은 단어들도 백 년 전에는 신조어였다. 세대 간 소통을 위해서라도 우려만 할 것이 아니라 연구를 해야 한다고. 맞는 말이다. 핵인싸, 꾸안꾸, 겉바속촉, 아아, 뜨아. 이 정도는 기성세대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음잘알, 꾸꾸꾸, 분조카, 스불재, 완내스, 갑통알 등등. 이쯤되면 걱정이 안되는 바도 아니다. 그러나 이것은 이 정도를 이제야 겨우 아는 내가 소통에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언어와 문자라는 것의 근본이 소통의 효율성을 위한 도구로 탄생한 것이고 보면 이해 못할 것도 없다. 우리의 고유한 자랑스런 문화와 전통이라며 억지스레 지키려 애쓰는 것보다 거슬러가는 한이 있어도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두는 것이 자연스럽고 쉽지 않은가. 꼭 우리 것을 지켜야한다고 고집할 필요가 있을까? 우리라는 개념을 '지구'라는 큰 프레임으로 본다면 문제될 것이 없다. 억지스러움은 언젠가 한계에 부딪히기 마련이다.
장황하게 늘어놓았음에도 아직 다 언급하지 못한 부분들이 많다. 와이에스나비 독서모임에서 그닥 호평을 하지 않는 분들도 있었지만 그 어떤 다른 책보다 얘깃거리가 많고 열띤 토론을 불러일으킨, 소통의 도구로 짱이다. 우리집 살롱에 지인을 초대할 때 슬쩍 던져놓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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