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과 5월에 걸쳐 구인사 1박 2일(4.30 ~ 5.1)일정이 잡혔다. 정초 구인사를 다녀오면서 아버님,어머님의 바램을 실현시켜 드리고자하는 맘으로 이루어진 스케줄이다. 아들내외와 손녀까지 함께 하는 여행이 좋으신 모양이다. 물론 우리도 함께 즐겁고 행복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남편은 1박 2일 여행을 위해 참 여러날을 고심했다. 4월 29~30일을 정해놓고 숙소를 정하려하니 주말이라 빈자리가 없다. 구인사 근처 소백산휴양림이나 소선암휴양림이면 딱 좋은데 대기 2번으로 여러 곳을 신청했지만 우리한테까지 올 기회가 없는 것같다. 그런데 친정에 언니들이 29일 엄마, 아버지를 모시고 식사를 하겠다니 이것도 맞지 않다. 남편은 휴가를 내서라도 29일 친정으로 가고, 그 다음날로 여행일정을 바꿔보려 애쓴다. 그 선한 마음이 복을 받은 것일까? 구인사 가까이는 아니지만 작년 겨울 동해를 여행하면서 매료되었던 바닷가를 다시 볼 수 있는 곳에 한 자리가 나서 예약을 했단다. 게다가 1박 2일동안 너무나 화창한 날씨에 미세먼지도 숨을 죽여준다. 남편은 기막힌 택일 능력자임을 이번에 또 한번 공고히 했다.
첫날은 증산역으로 오신 부모님을 픽업해서 나란히 있는 포항스페이스 워크와 시립박물관을 가기로 했다. 점심은 장사상륙잔전 기념관이 있는 바닷가에서 먹고, 숙소인 칠보산 휴양림에서 1박하는 것이다. 계획대로라면 입실 가능한 3시쯤 숙소에 도착해서 여유롭게 숙소 근처를 산책하며 삼림욕에 빠져보는 것이다. 그러나 항상 계획대로만 된다면 무슨 재미?
제일 먼저 도착한 스페이스워크. 포항제철에서 기증한 것이라 한다. 그래서인지 스페이스워크에서 정면으로 바라 보이는 곳에 쫙 펼쳐진 바다 건너 포항제철소가 있다. 아무렴 어떠랴. 시민들을 위해 이런 훌륭한 놀이문화를 제공한 회사라면 광고 좀 해도 괜찮다. 문제는 우리도 처음 와본 곳이라 그 위험성이나 공포감을 느껴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것도 84세 노부모님과 동행이라는 것도 잠시 잊은 듯하다. 아직도 경제 활동을 하시고, 마음은 언제나 청춘이신 아버님이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놀이 공원에 있는 롤러코스터 모형을 한 철제길을 걸어 올라가면서 전망을 볼 수 있는 곳이다. 밑에서 줄을 서서 기다릴 때는 그냥 사람들이 여유롭게 걸어가는 모습으로 보였다. 생각보다 긴 시간 1시간 30분여를 기다렸다. 그러는 중 자세히 보니 바람이 불어서인지 사람들이 움직여서인지 흔들림이 보인다. '어머나 저래도 안전한 걸까?' 물론 흔들려도 괜찮다는 안내 멘트가 나온다.
우리 차례가 되어 남편이 앞서고 딸램, 나, 어머님, 아버님 순서로 올라갔다. 뒤를 돌아보니 아버님 얼굴이 창백하다. 선크림을 바른 탓이겠거니 했다가 어머님이 부축하는 모습을 보며 심상치 않음을 눈치챘다. 남편이 얼른 맨뒤로 가서 아버님께 말씀드린다. "멀리 보세예. 발 아래만 보지 말고. 멀리! 바다를 좀 보세예." 어머님도 거들어 말씀하신다. "왜 자꾸 밑에만 보요. 저 멀리 보라니까." 나도 함께 주춤하는 모습을 보며 어머님은 딸램을 챙기라며 손사래를 치신다. 어찌어찌하여 완만한 왼쪽을 다 돌아 다시 원점으로 왔다. 더 가파른 오른쪽은 못가겠다 하실 줄 알았더니 "가자" 하신다. 대단하신 아버님! 언제나 사진과 동영상을 남기는게 낙이신 아버님은 아예 주저 앉아 사진을 찍으신다. 진정한 프로 사진작가의 자세다. 두려움 앞에 물러서지 않고 주저 앉아서라도 본연의 자세, 사진을 찍어내신다. 서서는 도저히 다리가 후덜거리니 차라리 앉아버리자 생각하신 모양이다. "여기를 올라온 사람 중에 내가 제일 나이가 많겠제?" 안정을 찾으신 것일까? 완주를 하고 땅을 밟으신 아버님 얼굴에 화색이 돈다. 그리고 한 말씀하신다. "오늘 좋은 구경했다. 그런데 다시 올 곳은 못된다." 제법 험한 산을 힘겹게 오르고도 절경을 보게 되시면 하시는 말씀. "여기 다시 오게 되겠나!" 아쉬움 가득한 말씀과는 사뭇 다른 반응에 우리가 뭘 몰라서 무리수를 뒀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어머님은 의외로 씩씩하시다. 마치 그냥 약간 높은 언덕을 오르는 느낌 정도로 사뿐히 다니신다. 걱정했던 딸램도 조금 지나니 적응이 되는지 사진도 찍고 동영상도 담느라 여념이 없다.
특별했던 경험을 뒤로 하고, 스페이스워크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포항시립미술관도 들렀다.
인상적인 그림들이 참 많았는데 위의 그림은 그 중 하나 '사랑'이라는 제목의 그림이다. 여인이 사랑하는 남자의 머리를 가까이 안고 그의 몸을 바로 보고 있다. 어떻게 해석을 해야할까? '사랑은 머리로 하는 것?', '남자의 지성을 사랑한다?' 역시 예술은 어렵다.
박물관까지 둘러보고나니 점심시간이 훌쩍 지나버렸다. 딸램은 배가 고프다고 뭐라도 먹자고 외친다. 남편은 지난 겨울 감동을 잊지 못하고, 꼭 그 때 그 바닷가에서 먹어야 한단다. 3~40분은 족히 가야 닿는 곳. 딸과 아빠, 어느 누구의 의견도 무시할 수 없기에 가는 차 안에서 먹는 방울토마토와 콘칩이 꿀맛이다. 드디어 장사상륙작전 기념관이 있는 바닷가에 도착했다. 그 때 그 겨울의 가슴벅찬 감동은 아니라도 역시 동해 바다는 가슴을 탁 트이게 하고, 할 수만 있다면 양팔 벌려 벌러덩 드러눕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한다. 잠시 바닷 바람을 호흡하고 적당히 그늘진 곳을 찾아 돗자리를 깔고 앉았다. 오징어덮밥을 준비했것만 웬일로 넣지도 않은 국물은 이렇게나 생겼는지. 그래도 어머님, 아버님은 바닷가에서 먹는 오징어덮밥 맛이 최고라며 칭찬을 연발하신다. 우리는 좋지만 준비하는 며느리가 얼마나 힘드냐며. 이 한말씀으로 준비하는 수고로움이 사르르 녹는다.
바닷가 바위 위에 앉은 어머님을 정성스레 사진에 담으시는 아버님과 그 모습을 또 카메라에 담고 있는 남편. 허리 숙여 모래밭에서 뭔가를 찾고 있는 딸램 만큼이나 순수하신 아버님은 밀려오는 파도에 달음질을 하신다. 늘 '네가 앉은 자리가 꽃자리'라 말씀하시고, 늘 행복하다고 하시는 아버님은 따뜻한 파스텔톤의 색안경으로 세상을 보시는 것 같다.
딸램은 연필을 잡기 시작할 때부터 하트를 그려줘서 일까? 세상 모든 것에서 하트를 찾아낸다. 보이지 않으면 직접 그려서라도 발길이 닿는 곳마다 하트를 남긴다.
그렇게 바다의 고운 빛과 바다 내음을 만끽하고 1시간여를 달려 칠보산 휴양림에 도착했다. 동해 근처 있는 휴양림임에도 바다 풍경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사방 빨간 금강송이 내뿜는 피톤치드가 코를 뻥 뚫리게 하고, 온 몸을 씻어주는 기분이다. 오늘 너무 무리하신 부모님을 배려하여 산책로는 다 돌지 못했지만 숲속에 있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된다. 저렴한 가격에 하얀 커버를 씌워 쾌적한 침구. 넓은 화장실. 콸콸 쏟아지는 찬물, 더운 물. 다섯 식구가 편안히 묵어갈 수 있는 곳으로 참 좋다. 하루만 있다 가기에는 너무 아깝다며 다음에는 여러 날 지내면서 관심 분야의 책을 독파하고 가자는 야심찬 계획도 세워본다.
산책로 입구 가까운 곳에서 쉬면서 잔가지가 많은 금강송을 보시며 암그루라고 하신다. 주로 여자들이 자잘한 근심걱정이 많으니 그러하다고. 1박할 때마다 단골 메뉴로 올라오는 와인삼겹살에도 어머님, 아버님은 칭찬을 아끼지 않으신다. 이번에는 곰표 맥주까지 준비하여 아버님의 말씀이 평소보다 길어지신다. 역시나 부처님의 은덕으로 이러저러하여 참 행복하다고 하신다. 두분의 1남 2녀의 배우자인 두 사위와 며느리가 집안에 잘 들어와서 그런거라고. 이렇게 말씀하시는데 어떻게 나빠질 수 있단 말인가.
다음날 아침 일찍 떡국을 끓여 먹고, 짐을 챙겨 나왔다. 갈 길이 멀어 서둘러야 한다. 이 좋은 공기와 경치를 남겨두고 떠나야하는 발걸음이 아쉽다. 여기저기 딸램을 포즈 취하게 하고 사진을 찍어본다. 그렇게 구인사를 향해 출발후 얼마나 지났을까. 아뿔사. 벤치에 가방을 올려 놓고 그냥 와버렸다. 이런 건망증을 타박하는 남편과 달리 너무 멀리 가지 않아 생각난 것이 얼마나 다행이냐며 위로해주시는 아버님. 그래서 오늘은 좋은 일이 생길거라고 하신다. 역시 파스텔톤 울아버님 짱!
3시간을 넘게 충북 단양에 있는 구인사를 향해 달린다. 단양읍내에서 가스 충전도 하고, 어머님이 모아두신 캐쉬워크 포인트로 빠리바게트에서 빵도 푸짐하게 챙겼다. 제일 먼저 꼬불꼬불 외길을 달려 1대 종정스님 산소부터 들러 인사를 드린다. 다시 돌아나와 구인사 정문에 도착하고, 배가 고프다며 공양실부터 찾는다. 다행히 늦게 들어섰음에도 친절히 밥을 내어주시는 스님께 마음으로 감사를 전한다. 배를 채웠으니 곳곳마다 불전함에 성의를 표하고 절을 하러 다닌다. 가는 곳마다 온천지가 초록초록이고, 울긋불긋 이쁘다.
마지막으로 2대 종정스님의 산소가 있는 '강건너'를 간다. 스님께 인사를 드리고 아래를 내려다보는 풍경은 정말 감탄이 절로 나온다. '아~ 이런 자리를 명당이라고 하는구나.' 풍수지리에 대해서는 일자무식이라도 그냥 느껴지는 곳이다.
10군데가 넘는 곳에서 3배를 드리면서 마지막 3배 마다 엎드려서 아래와 같이 읖조린다.
"부처님, 부처님, 부처님 제가 알게 모르게 지은 죄를 용서하십시오.
부처님, 부처님, 부처님 부처님의 영원한 불제자가 되겠습니다.
부처님 지금 저에게 주어진 모든 것에 감사드립니다.
부처님 우리 가족의 건강과 행복, 평화를 기원합니다.
부처님 우리 식구들이 평생 베풀고, 나눌 수 있는 삶을 살게 하십시오."
첫 두 문장은 처음 구인사에 입문할 때 어머님께서 알려주신 대로 따라한 것이다. 영원한 불제자가 될 것을 마음으로 100% 확정한 것은 아니지만 자꾸 읖조리다보니 그리 되어가는 느낌이다.
생각보다 고단한 여행이 되었지만 어머님, 아버님께서 흡족해 하시니 일단 성공이다. 여행하고 남는 것은 사진이라더니 한장 한장 넘겨볼 때마다 그 때 그 느낌이 새록새록 다시 행복으로 다가온다. 어쩌다보니 구인사를 다녀오는것이 분기별 행사로 굳어진다. 온가족이 한 방향을 볼 수 있다는 건 참으로 다행스럽고 감사한 일임을 알기에 마다할 이유가 없다. 오래 오래 함께 할 수 있도록 어머님, 아버님 건강 잘 지키시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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