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언니의 인스타 사진을 캡쳐했다. 내가 하트를 살짝 누르면 정열의 빨강이 된다. '좋아요 1개'. 언제나 '좋아요 1개'다. 언니가 다른 사람 피드에 좋아요를 누르는 일은 없다. 그저 혼자서 자신이 그린 그림을 올릴 뿐이다. 언니는 경산에서 부동산을 한다. 여행 다니기를 좋아하는 언니는 한가한 시간에는 영어회화 공부를 한다고 했다. 그러다 영어공부가 시들해졌는지 요즘은 그림을 그린다고 한다. '엥? 언니가 웬 그림? 그림에 ㄱ도 모르는 사람 아니였어?'
우리 형제자매들은 어릴 때부터 늘 빠듯한 살림을 일궈내시느라 밤낮으로 고생하시고, 그 와중에 늘 다투시는 부모님 밑에서 자랐다. 이런 환경에서 '빗나가지 않고 이렇게나마 우리가 살아가는 건 대단한 거야.'라고 한다. 다섯자매 중에 막내인 나도 늘 불안과 불만을 품고 있었는데 큰언니는 오죽했을까? 내가 철모르고 응석을 부릴 때도 7살 많은 큰언니는 눈치코치 다 보았을 테니. 그런 사정도 헤아리지 못하고 맏이다운 후덕함이 없는 큰언니에게 아쉬움을 갖고 있었다. 큰언니와 속내를 다 얘기하다보면 참 미안해질 것같기도 하다.
나는 큰언니를 잘 모른다. 내가 추억하는 큰언니에 대한 기억이 몇 가지 있다. 내가 초등학생때 언니는 상업고등학교를 다녔고, 졸업할 무렵을 대학을 가고싶다고 했다. 엄마는 바로 아래 작은오빠가 있으니 대학을 보내줄 수 없다고 했나보다. 그러면 방통대라도 가겠다며 등록금 10만원만 달라고 했다. 그 돈을 해줄 수 없는 형편이였는지 언니는 펑펑 울었고, 결국 한일합섬에 취직을 했다. 결코 잊을 수 없는 '26살'에 언니는 결혼을 했다. 어린 눈에 결혼하겠다고 데려온 형부가 이미 아저씨로 보였다. 아마도 그때부터 형부는 이마가 넓어지고 있었나보다. 다른 남매들에 비해서 유난히 피부가 하얀 언니는 여드름이 많아 눈과 코만 빼면 온통 화산이였다. 그런데도 형부는 큰언니가 젤 이쁘다고 했다. 콩깍지가 무서운 놈이구나. 그런데 60를 바라보는 언니가 아직도 이쁘다고하니...
언니는 확실한 걸 좋아한다. 옷을 골라도 남들이 고를 것 같지 않은 샛노란 코트, 빠~알간 원피스.
"언니야, 그런 옷도 고르는 사람이 있으니 만드는 사람도 있는가부다."
"그렇지..."
언니는 필링, 느낌, 직감을 중요시한다. 그냥 언니가 봤을 때 감이 오면 선택한다. 다른 사람의 평가나 선호도는 중요치 않다. 전문가가 이랬데 저랬데도 소용 없다. 본인에게 느낌이 와야한다. 기감도 아주 예민하다. 한때 같이 단전호흡 수련을 받은 적이 있다. 그때만 해도 남을 많이 의식했던 나는 같이 수련하면 부끄러웠다. 워낙 유별나게 티가 났다.
언니는 엄마의 하소연을 듣는게 싫다고 했다. 엄마는 평생을 아버지와 사시면서 얼마나 많은 풍파가 있었을까. 그 한풀이를 큰언니는 다 듣다보니 지쳤나보다. 그럴만도 하겠다 싶다. 그치만 그닥 친절하지 않은 언니가 불만이였다. 지금은 생각한다. 언니는 언니만의 사정이 다 있었다고. 엄마는 젤 만만한 나한테 곧잘 얘기하신다. 그런데 내가 시간을 잘 내어드리지 못하고, 사는 모습도 넉넉해 보이지 않으니 또 화살은 언니에게로 향한다. 아직도 큰언니가 엄마,아버지의 온갖 일들을 다 처리하고 있다. 나도 신세진 것이 많다. 고맙다 말도 못하고 불만만 안고있었던게 참 미안하고 부끄럽다.
참으로 다행스럽다. 지금은 언니가 여러모로 여유가 있어 감사하다. 생각지도 못한 그림을 시작하고는 행복해보인다. 배운 바도 없이 혼자 취미로 시작한 그림이 참 이뻐 보인다. 내 마음에 든다. 큰언니에게 이런 재주가 있었다니.
"언니야, 사랑해. 미안해. 내가 잘할게. 고마워."
#큰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