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한 공기의 사랑 #6 주인(主人)

맹물J 2023. 3. 9. 07:02

내 삶의 주인으로 산다는 것은 내가  원하는 것을 하는 삶이다. 타인이 원하는 것을 하는 사람은 노예의 삶을 사는 것이 된다. 벚꽃은 4월의 기후를 원하고 동백은2월의 기후를 원한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나는 나이기에 '내가 원하는 것'이 있다. 그런데 내가 원하는 것이 쉽게 찾아지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처럼 돌고 돌아 한참을 헤매다 찾는 수도 있다. 작가는 말한다. 내가 원하는 것을 너무 늦게 발견하게 되면 얼마나 슬프겠냐고.

주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한다면 상관 없다. 그들은 내가 원하는 것을 해주려는 사람들이니까. 그러나 그들 자신이 원하는 것을 내게 종용하거나 강요한다. 관계에는 즐거움, 행복, 충만함 같은 기쁨을 주는 관계가 있고, 우울, 분노, 불행 같은 슬픔을 주는 관계가 있다. 당연히 슬픔을 주는 관계는 단호하게 끊어야 한다. 내가 원하는 내가 주인으로 사는 삶이 아니니까.  


멈출 수 있어야, 혹은 그만둘 수 있어야 자유다. 멈출 수 있는 사람만이 자기 뜻대로 움직일 수 있고, 관계를 단절할 수 있는 사람만이 자기 뜻대로 관계를 만들 수 있다. 노!라고 할 수 있어야 하고, 멈출 수 있어야 하고, 그만둘 수 있어야 한다. 바로 이럴 때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이 당당해지고, 그만큼 우리는 주인으로서 삶을 영위하게 된다. 멈출 수 있는 자유를 가슴에 품을때, 그가 누구이든 상대방은 우리를 사랑하지는 않더라도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이익과 이해의 관계가 아니라 애정과 사랑의 관계라면 우리가 감당해야 할 의무가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정직이다. 한마디로 말해 자신의 본래면목을 있는 그대로 상대방에게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관계라면 자신이 원하는 것과 원하지 않는 것을 상대방에게 그대로 표현해야 한다. 그것은 상대방에 대한 예의이자 사랑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의무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타인에게 강요하지 않고, 반대로 타인이 원하는 것에 복종하지도 않아야 한다. 이 두 가지 준칙 사이에서 유지되는 것이 바로 사랑 아닌가.

스피노자의  <에티카> 즉, 윤리학에서 말한다.
'당신에게 기쁨과 쾌활함을 주는 관계가 있다면 그것을 목숨을 걸고 지속하고, 당신을 슬프게 하거나 우울하게 하는 관계가 있다면 목숨을 걸고 끊어버려라.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는 사람이 바로 주인이다.'

슬픔이 생기는 마주침을 끊어서 슬픔이 지속되는 관계를 원천봉쇄해야 한다.

기쁨의 마주침과 슬픔의 마주침을 미리 결정할 수는 없지만, 우리는 그 마주침을 지속할 것인지 아니면 단칼에 끊을 것인지 결정할 수 있는 자유를 갖고 있다.
자유란 별것 아니다. 몸이 있으면 마음도 같이 있고, 마음이 있으면 몸도 같이 있는 것이다.  
기쁨의 관계에 몸이 있다면 마음도 몸과 함께 하고, 슬픔의 관계에 몸이 있다면 마음은 몸을떠나 딴 곳으로 간다.

몸과 마음 사이의 거리가 점점 줄어들면 우리는 주인으로서의 삶을 영위하게 되는 것이고, 반대로 몸과 마음 사이의 거리가 점점 벌어지면 주인 아니라 노예의 삶으로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 내 삶은 노예의 삶! 딱 그것이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하면서 살지 못했으니까. 오히려 타자가 내 삶에 깊숙히 들어와 그가 원하는 것을 나에게 종용하고 강요했다. 나는 '노'라고 말할 당당함이  없었고 판단력도 없었다.  또 어쩌면 사랑의 관계가 아니라 이익과 이해의 관계였기에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사랑과 우정을 빙자한 이익과 이해. 잘못이 그에게 더 많았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노'라고 강력하게 말하지 못한 죄. 애시당초 그런 요구가 가능하도록 만만하게 보인 죄. 슬픔의 관계를 끊지 못하고 지속한 죄. 내가 원하는 것을 강하게 어필하지 못한 죄. 따지고보면 내 잘못도 적지 않다. 이제는 '노'라고 말해야 한다. 단호하게 끊어야 한다. 더 이상 슬픔의 관계를 지속하는 노예는 싫으니까.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다. 슬픔의 마주침을 끊으니 기쁨의 마주침이 더 크게 자리한다. 주인으로서 당당해진다. 왜 진작 이런 삶을 모르고 살아왔던가. 한 방향이 정해지면 마치 그 옆은 볼 수 없게 가림막이라도 쳐놓은 것처럼 앞만 본다. 생각을 깊이 하지 못하고, 사고가 경직된 탓인가. 아무튼 책을 통해 나를 성찰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게 됨은 더 없이 큰 기쁨의 마주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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