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아'가 없단다. 2장 무상에서 '신을 죽여야 한다'는 말만큼 충격적이다. 얼마나 많은 구도자가 무아를 찾아 식음을 전폐하고, 깨달음에 이르고자 평생을 거는 사람도 있는데. 그 실상은 없음이라니... 물론 믿고 안믿고 받아들이고 받아들이지 않고는 개인의 선택이지만 이렇게 단정적으로 얘기하는 사람을 글을 만나본 적이 없어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한 때 나도 살짜기 무아를 찾아 발을 담가본 적이 있다. 몇년 해보니 내 길이 아님을 알고 뛰쳐나왔지만 아직도 남아있는 사람들은 허상을, 있지도 않은, 스스로 만든 상을 쫓아가고 있단 말인가.
먹기도 하고 잠도 자야 참나를 찾는 수행도 할 수 있다. 먹지도 못하고 제대로 자지 못하면 수행을 할 수 없고, 따라서 참나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 어쩌면 구도자가 찾았던 참나는 먹지도 자지도 훼손되지도 않는 삶에 대한 꿈을 반영한 것이리라. 그 출발은 먹어야 하고 자야하고 매번 휀손되는 삶이다. (....)참나를 찾은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다. 배고픔, 졸림, 그리고 병듦이 완화되거나 사라질 때에만 잠시 동안 유지되는 배부름, 맑음, 그리고 건강함! 바로 이 마음 상태를 추상화하고 실체화해서 만든 환영이 '참나'가 아닌가.
축축한 공기, 적당한 기후, 그리고 이슬을 받을 만한 잎이 갖추어져야 이슬 한 방울이 만들어진다. '나' 또한 그냥 뚝 생겨진 것이 아니라 나 아닌 존재와 연결되어야만 '참나'가 된다. 타자와의 접촉이고 연결이다. 그러니까 사랑이고 자비다.
무아는 단순히 자아가 없다는 말이 아니라 사람이 죽어도 영원히 존재하는 영혼과도 같은 불변하는 실체가 없다는 의미다.
제법무아(諸法無我)!모든 존재에는 우리가 반드시 따라야만 하는 본질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액체를 담는 것을 컵의 절대적인 본질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야, 우리는 컵에 꽂을 꽂아둘 수도 있고 예쁜 구슬을 담을 수도 있다.
그렇지. 나는 이런 사람이라는 규정을 짓지 않아야 어떤 환경에서도 유연하게 적응하고 화합할 수 있다. 술을 타면 술이 되고, 오렌지 쥬스를 타면 노란 오렌지 쥬스가 되는 맹물처럼, 자신을 고집하지 않는 사람이 무아의 경지에 이른 사람이라 생각했다. 육신이야 없앨 수 없지만 '관념의 나'가 없어야 무아라고 생각했는데 작가는 그것이 무아가 아니란다. 죽어도 영원히 존재하는 불변하는 실체가 없다는 의미라고 한다. 지금껏 내가 잘못 알고 있었든지 아니면 작가 나름의 새로운 정의인지 모르겠다. 어야든둥 결론은 맘에 들어서 계속 써나간다.
작가는 말한다. 영원한 것도 없고, 순간도 없다. 우리는 순간과 영원, 그 중간쯤 어디가에서 머무른다. 그러니까 불교에서 말하는 중도에 서는 것이다. 즉 자비와 사랑의 길에 서는 것이라고. 그런데 그 사랑에 자발성과 자유가 없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한다. 백번 맞는 말이다.
먼저 영원할 듯한 것에서 작은 변화를 찾아라. 그리고, 덧없이 변했다고 생각하는 것에서 지속적인 것과 연속인인 것을 찾아라. 이를 테면 아내와의 관계가 예전같다고 생각하지 말고 그 미세한 변화를 포착하려고 노력해라. 작은 주름 하나, 깊은 한숨 하나, 늘어난 흰머리카락 하나를 찾아낼 수 있으니. 반대로 아내가 늙었어도 그녀의 변하지 않는 미소나 목소리에 주목하라.
전날 아빠랑 열심히 눈사람을 만든 아이. 눈을 뭉쳐서 나뭇가지로 눈썹도 코도 만들어 붙이고, 양손에 장갑도 끼워준다. 그리고 잠든 사이 밤새 기온이 올라서 눈사람은 다 녹고, 나뭇가지와 장갑만 덩그러니 남아 있을 때 아이에게 어떻게 말해주어야 좋을까?
"인연이 모여서 눈사람이 되었고, 인연이 다해 눈사람이 사라진거야. 다시 인연이 모일 때까지 기다리자."
이 책을 좀 더 일찍 읽었더라면 아이의 수 많은 질문에 좀 더 현명한 답변을 할 수 있었을까? 알수 없지만 어쨌든 이런 힌트들은 감사하다.
혹자는 얘기한다.
"니가 찾는 모든 것은 이미 세상에 다 있다"
그래 맞다. 한 때는 무슨 철학적 사색인지 도를 닦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짓도 해봤지만 그 모든 번뇌의 답이 강신주 작가의 책을 다 읽어보면 다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한 챕터 한 챕터 설레며 읽게되는 요 책! 아깝다 다 읽기가.
#한공기의사랑 #아낌의인문학 #무아 #제법무아 #중도 #사랑 #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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