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경지수(明鏡止水)! '맑은 거울과 고요한 물(정지된 물)'이란 뜻이다. 맑은 거울도 고요한 물도 자신의 모습을 비추기에 적당하다. 명경은 바람이 분다고 해서, 나뭇잎이나 물방울이 떨어진다고 해서 거울의 표면이 요동치지 않는다. 그러나 돌이라도 떨어진다면 상황은 다르다. 표면은 깨어지고 비추어진 내 모습도 일그러진다. 반면 지수는 작은 바람, 조그만 잎사귀, 작은 빗방울에도 금세 표면이 요동치고 만다. 지수에 돌이 떨어지면 커다란 파문이 발생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시 고요한 물로 돌아간다.
현재의 '없음'이란 과거에 있었다는 기억이 있어야 가능하다. 미래에 대한 의식인 기대도 역시 과거의 기억이 있었기에 가능하다. '없음'의 경험은 어떤 대상이나 어떤 사건에 대한 기억이나 기대가 전제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순수한 없음'은 누구도 경험할 수 없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어떤 대상이나 사건과 무관한 '순수한 무', 즉 순수한 없음을 보았다는 사람들의 이야기, 종교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이야기에 속아서는 안된다.
하루하루의 삶이 고통이라고 1장에서 얘기했다. 고통에는 원인이 있게 마련이다. 불교에서는 번뇌와 망집이 그 원인이라고 한다. 번뇌는 희론에 농락당하는 마음 상태 또는 쓸데없는 걱정이나 잡념에 사로잡힌 마음 상태이고, 망집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그렇게 집중할 필요가 없는 것에 집착하는 마음 상태를 가리킨다. 번뇌와 망집도 기억과 기대에서 온다.
당신은 거울이 아니라 물과 같다. 바람에도 조약돌에도 잎사귀에도 당신은 흔적을 남기지만, 그 흔적은 곧 사라지고 표면은 다시 고요해지는 물과 같다. 고요해져야 다시 파문이 일어날테니까. 고요한 물에 돌을 던져보라. 파문이 일어나 더 이상 세상을 비출 수 없다.이것이 번뇌와 망집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물은 다시 고요해진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물속 깊은 곳의 돌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번뇌와 망집과 무관한 기억을 상징한다.
열반에 이르러 생긴 편안함과 고요함은 순간적일 뿐, 열반에 제대로 이르렀다면 우리는 열반에 머물 수는 없다. 고요한 물은 고요할 수 없는 법이니까.
물이 고요해지는 순간 놀랍게도 파문이 다시 생기기 시작한다. 너무 맑고 고요하고 잔잔하니까 조그만 꽃잎 하나에도 조그만 바람 하나에도, 조그만 나뭇잎 하나에도 물에 파문이 일기 때문이다.
타인의 희로애락과 계절과 풍광의 변화에 과할 정도로고 반응하자. 바로 그것이 자신을 사로잡는 번뇌와 망집에서 벗어나는 첫걸음이 될 테니
번뇌와 망집에 빠져 괴로워하는 친구가 있다면 혼자 두지 말고 무조건 그를 만나라. 억지로라도 데리고 나와야 한다. 카페나 영화관같이 고정된 장소는 피하라. 그런 곳에서는 오히려 없어진 소중한 것에 집중하기가 쉽다. 길거리를 함게 걷거나 가까운 야산에 올라가는 것이 좋다.
바깥을 느낄 수만 있다면, 그래서 바깥에 반응할 수만 있다면, 그들은 조금씩 없음에 대한 경험, 상실에 대한 경험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테니까.
결론이 조금 미비하다. 번뇌와 망집을 없애기 위해서는 자신보다는 외부에 집중하라고 한다. 일면 맞는 말 같다가도 사람이란게 계속 의식을 외부에만 둘 수 없을 진대 고요해졌을 때, 다시 떠오르는 번뇌와 망집은 어쩔 것인가. 번뇌와 망집의 원인이 되는 기억과 기대가 희미해지는 방법은 역시 시간이 흘러야 가능한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물리적인 시간은 같지만 체감시간이 짧아질 수 있도록 다른 오락거리에 빠져보는 것은 어떨까. 고요한 물에 떨어진 돌이 사라지진 않지만 시간이 지나면 깊이 가라 앉고 표면은 다시 고요해지듯이.
어쩐 일인지 오늘 내용은 잘 정리가 안되고 뒤죽박죽이다. 시간에 쫓기지 않고 다시 천천히 읽어봐야 정리가 될 모양이다.
#한공기의사랑 #아낌의인문학 #강신주 #정 #기억 #기대 #번뇌와망집 #고통의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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