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결혼기념일 선물로 받은 방짜유기가 도착했다. 몇 주에 걸쳐 방짜유기를 공부하고, 믿을 만한 이형근 방짜유기를 세식구에 맞게 구입을 했다. 택배박스를 풀면서 생각보다 무거운 것이 잘한 짓인가 싶다. 넘 깊게 고민하고 있을 만큼 시간이 여의치 않다. 유튜브에서 유기그릇 처음 세척하는 법을 검색하니 식촛물에 2시간 정도 담궈두란다. 밤에 담가둔지라 아침까지 그냥 뒀다. 그러니까 8시간정도는 식촛물에 담겨 있었는데 괜찮을런지 모르겠다. 아침에 파워버즈(억센 암웨이 녹색수세미)로 벅벅 밀어서 닦았다. 물기를 바로 닦지 않으면 얼룩이 진다길래 마른 행주로 정성스레 매만지며 닦았다. 가지런히 선반에 올려놓으니 일단 참 고급지고 이쁘기는 하다. 부엌이 쪼끔 있어빌리티하다는 느낌마저 든다.
저녁에 돌아와 딸램이랑 둘이 먹는 식탁을 준비한다. 우리집 새식구가 된 놋그릇에 담은 따뜻한 밥과 국, 놋수저를 가지런히 놓으니 똑같은 음식이라도 정성스레 차려진 밥상 같다. 첫 시연을 함께 하지 못하고 야간 근무를 하는 남편에게 사진을 찍어 보낸다. 아마도 선물한 보람을 느끼며 흐뭇한 표정일 듯하다. 처음 들었을 때 그 무게감은 안정감으로 바뀌고, 우리가 참 귀한 사람이 된 느낌이다. 가벼운 도자기그릇을 쓸 때는 일본사람이 밥 먹듯 왼손에 쥐고 밥을 먹기도 했다. 유기그릇으로는 절대 그러기 힘들다. 평소 사용하는 그릇만 봐도 그것을 사용한 사람들의 품격을 짐작할 수 있겠다. 일본 사람들이 주로 사용했던 밥공기는 편리한 듯하나 가벼워 경박해보일 수 있다. 반면에 우리 조상들이 전통적으로 사용해오던 놋그릇은 손은 많이 가지만 먹는 사람의 기품을 반영한다.
몇 주 전 어머님이 손수 담가주신 물김치를 놋그릇에 담으니 이제야 어머님 솜씨가 제대로 돋보인다. 유기 그릇은 찬 음식은 시원하게, 더운 음식은 따뜻하게 오래 보존되는 성질이 있다. 그러니 같은 음식을 담아두어도 덜 상하겠다. 살균 효과도 있어서 놋수저를 오래 사용하면 입병도 잘 생기지 않는다. 또 농약을 많이 사용한 식재료로 만든 음식을 담아두면 유기그릇의 색깔이 변한다. 이모 저모 살펴봐도 참 사랑스런 님이다. 그만큼 잘 관리하기 위해 정성과 사랑을 쏟아야 한다. 빨리빨리와 속전속결이 미덕이라 생각했던 시절에는 제 아무리 외양이 빼어나고 기능이 우수해도 감히 넘 볼 수 없었다. 삶이란 지금을 살기 더하기 다가오는 지금을 살기의 무한 반복이란 사실을 깨닫고 나니 세상이 다른 눈으로 보인다. 그리고 방짜유기 그릇의 가치를 볼 수 있는 안목이 생긴 것도 삶의 태도, 삶의 방향성이 바뀌고 나서다. 생각이 바뀌면 다른 세상을 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