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눈꼴 시리지!

맹물J 2023. 2. 11. 23:57

코로나 덕분에 만나지 못했던 친구들을 3년만에 만났다. 중, 고, 대학을 함께 했던 친구들. 장유 사는 친구는 양산 우리 아파트로 운전을 해오고, 우리집에서 울산 친구집으로는 내가 운전하고, 울산에서는 울산 친구가 운전을 하니 착착 뭔가 잘맞다.


울산과 경계에 있는 경주 양남 주상절리로 차를 달린다. 울산친구가 운전을 하며 쉴 새 없이 최근 가족사를 성토하는 사이 목적지인 유명한 칼국수집에 도착이다. 칼국수를 먹으며 이런 저런 안부를 묻는 중에 나의 신변 변화 얘기가 나왔다. 주제가 쉽지 않자 친구가 카페에서 2차를 듣고 지금은 맛나게 먹자고 한다. 다른 친구 역시 동의하며 칼국수 그릇이 비워지자마자 맞은 편 카페로 이동한다.

밖에서 보니 전경이 너무 좋을 것 같은 카페에 들어갔다. 막상 주문을 하고 적당한 테이블을 찾는데, 창가 자리는 하나도 없다. 차선책으로 입구 자리에 앉아서 창가 자리가 비기를 호시탐탐 노리며, 나의 코로나 설을 들어준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친구가 창가를 가리키며 외친다.
"저기 자리 비었다"
"옮기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찻잔, 가방, 벗어둔 파카까지 주섬주섬 챙겨들었다.
"근데, 햇볕이 너무 쎈데..."
"그렇지, 눈도 시리고."
"맞네, 맞네 , 원래 자리가 더 좋다."
"그렇네, 다시 가자"

순간 알았다. 그래서 우리가 친구라는 것을. 어릴 적 친구라는 이유만으로 몇년만에 만나도 허물 없고, 반갑고, 치부를 드러내는 성토도 망설임 없이 할 수 있다는 것을. 그건 우리의 처지가 같아서다. 신영복선생님의 담론에서 언급했듯이 입장이 같은 것이 관계의 최고 형태인 것이다. 같은 학교, 각자 다른 어려움이지만 힘듦이라는 공통점을 가진 가정환경, 다르지만 자녀에 대한 고민이라는 동질감, 같은 나이 등등.

따사로운 햇살에 나이탓인지 '눈이 시리다'는 말에 공감하며 '그래 그래 다시 옮기자'에 만장일치!
"한 사람이 나는 안 시린데... 하면 어떻게 되는거지?"
"그러면 눈꼴 시리지!"
한다.

하하하. 맞다. 그러면 눈꼴 시리다. 이 친구들과 평생 관계가 지속될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이렇게 가끔 만나 밥 먹고, 차 마실 수 있는 정도의 경제력과 건강이 허락된다면 나쁘지 않은 삶일 터이다. 친구들은 공립교사라 줄어들었다고는 하지만 연금으로 노후 준비를 하고, 나는 나름 암웨이사업으로 준비를 한다. 벌써 친구들을 보면 건강에 이상 신호를 감지하고 있다. 한 때는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얄팍한 나의 건강상식으로 잔소리도 많이 했지만 별 소용 없다. 스스로 자각하고 각자 환경에 맞게 준비를 해야한다. 다음에는 친구들의 건강관리에 좀 더 직접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뭔가를 궁리하고 만나야겠다는 생각이다.

우리는 언제나처럼 '자주 만나자!'하고 헤어진다.
그 약속이 지켜질지는 모르지만 언제 만나더라도 지금처럼 편안하고, 이것저것 재지 않고, 맘껏 속시원히 얘기할 수 있어 행복한 시간을 함께 하리라는 것을 안다.

#양남주상절리 #콘크카페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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