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는 큰오빠, 올해는 형부와 큰올케 환갑이다. 어쩌다 보니 형부 환갑은 전화와 금일봉으로 대신했는데, 큰올케언니 환갑은 특별히 더 챙겨야 한다는 엄마의 당부가 있었다.
큰 조카가 올해 서른다섯 살이니 35년 이상 오빠랑 살아왔다. 늘 하루하루 삶이 팍팍했던 엄마는 큰며느리 생일상 한 번 제대로 차려준 적 없다며 눈시울을 적신다.
"엄마는 막내딸 생일도 챙겨준 적 없잖아. 생일날 미역국 먹어본 기억이 없는데. 하물며 할아버지 제사는 어쩜 한 번도 잊은 적 없으면서 같은 날 딸 생일은 말이라도 축하해 준 적이 없어."
그러자 엄마의 눈물이 쏙 들어간다. 엄마의 삶이 얼마나 고달팠는지 알기에 그저 해보는 응석이다. 지금은 다 이해가 된다. 한 때는 내가 자존감이 낮은 건, 집에서 생일 한번 챙겨 받지 못하고 존재감 없이 자란 온 탓이라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언니, 오빠들의 스토리를 들어보면 그래도 내 삶은 포시러운 것이었다. 이 설을 다 풀자면 한도 끝도 없어 생략한다.
어쨌든 엄마의 특별 제안이 있었다. 큰올케언니는 무남독녀 외동딸로 함께 해줄 형제자매도 없으니 얼마나 외롭겠냐며 봉투만 보내지 말고 식사라도 같이 하면 좋겠다고 하셨다. 그리하여 마련된 자리다. 있는 듯 없는 듯 늘 큰오빠의 옆 자리를 묵묵히 지켜와 준 올케언니가 고맙다.
큰오빠가 처음 올케언니 될 사람을 집으로 데려왔을 때도 참 이쁘다 생각했는데 여전히 그 미모를 유지하고 계신다. 어찌 저 외모에 환갑이란 단어를 써야 할지 참으로 어색하기 그지없다. 멀리서 보면 30대, 40대라 해도 믿을 판이다. 청도 안압정에서 보리굴비와 제주옥돔구이로 식사를 하고, 그 옆에 있는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고집불통 아버지 덕분에 팔순이 넘은 연세에도 맘 편할 날 없는 엄마! 최근에도 운전면허를 놓기 힘들어하시는 아버지 때문에 생고생을 하셨다. 이제는 자식들이 보호자가 되어 아버지를 설득하고, 오늘 확답을 받았다. 차를 팔겠다고. 60년을 넘게 거의 매일이다시피 다투셨던 두 분의 뒷모습이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사진을 찍은 큰언니의 간절한 바람이 묻어나서일까? 지금 모습처럼 남은 여생도 평화롭고 아름답기를 바라는.
노안으로 안경을 앞머리에 걸치고 폰을 확인하는 큰오빠를 보며 엄마, 아버지께 말씀드린다.
"엄마, 아버지만 늙어 가시는 거 아니에요. 우리도 같이 늙어 가. 이제 줄줄이 환갑이잖아. 우리도 아버지 나이되면 운전은 못하겠지."
인생사 굵은 마디마다 참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시기가 있다. 마냥 신나게 뛰어놀던 코흘리개가 국민학교 1학년을 입학하던 때, 2차 성징이 나타나며 사춘기로 접어들 때, 대학생이 되며 아가씨란 호칭을 처음 들었을 때, 30대 중반이 되도록 결혼을 안 했는지 못했는지 그 무렵 누군가 '아줌마'라고 부를 때, 출산 후 '어머니'라는 호칭을 처음 들었을 때가 그랬다. 이제 남은 건 어느 날 '할머니'라는 호칭을 처음 듣게 될 때 참으로 어색할 것 같다. 그리고, 지금의 아버지처럼 더 이상 호칭의 변화는 없으나 내 몸 같이 여기던 것들이 하나하나 상실되어 갈 때가 아닐까 생각된다. 부디 그런 때가 되었을 때 물 흐르듯 자연스레 받아들이는 어른이 되길 바란다.
어린이에서 어른이 되는 성장을 당연시했듯이 나이 듦을, 늙어감을 거부하지 않고, 이 또한 자연스러운 현상임을 받아들이는 어른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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