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은 출근하고 딸램은 국어선생님이 내주신 모둠별 과제를 위해 친구집 J아파트로 간단다. 아직은 낯선 동네라 우리 아파트밖에 모를 텐데 잘 찾아갈지 걱정이 된다.
"같이 걸어갈까?"
"친구가 길 알려주기로 했는데..."
산책 겸 같이 걸어갈까 했더니 친구랑 통화하면서 걸어간다.
식탁에 앉아 이것저것 기록하고 있으니 커피 생각이 간절해진다. 산책도 해야겠기에 뒤늦게 운동화를 신고, 현관 앞에 있는 버릴 재활용 박스들도 챙겨 나왔다. 아파트 입구를 나와 두리번두리번거리며 걸으니 J아파트가 금세 눈에 들어온다. 늘 다니던 도서관 근처다. 우리 동네는 걸어서 15분 거리 내에 거의 모든 생활권이 형성되어 있다. 초등학교, 중학교, 보건소, 한의원, 치과, 복지관, 체육센터, 다이소, 도서관, 미용실, 마트, 카페, 우체국, 농협 등등. 한여름에 이사 와서는 이렇게 짧은 거리인 줄 모르고 대부분 차로 다니다가 가을이 되어 산책을 시작하고 보니 다들 옹기종기 모여있어 신기하다.
걸으면서 생각한다. 어느 집 커피를 마셔볼까? 아파트 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곳으로는 '원유로'가 있다. 임대를 내놓아 곧 주인이 바뀔 것 같다. 언제 들러도 알바생인지 주인인지 젊은 아가씨들이 얼굴을 바꿔가며 있지만 에너지가 느껴지지 않다. 저가 커피 중에 산미가 있는 커피를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가게임에도 그냥 지나쳐 걷는다. 좋아하던 브랜드지만 이 집 커피는 시들하고 밍밍한 맛이다. 기분 탓이겠지!
그다음 선택지로는 '컴포즈' 커피가 있다. 최근에 갓 오픈하여 젊은 점원들이 활기차게 주문을 받고, 테이크아웃하는 손님도 많아 보인다. 또 한 곳은 같은 브랜드이고, 기존에 있던 곳으로 알바생을 구한다는 광고가 붙어있다. 주인장으로 보이는 50대 후반의 아줌마가 있다. 오늘은 그 옆에 70은 되어 보이는 마스크를 끼고 베레모를 쓴 깡마른 분이 목청을 높인다.
"주문하시겠습니까? 뭘로 드릴까요?"
목소리가 우렁차고 활기 넘치는 할아버지 아니 아저씨, 그러니까 할아저씨라 해야 할까? 퇴직 후 인생 2막을 시작하신 걸까? 오늘의 당첨 번호는 3번! 할아저씨의 카페가 당첨이다.
요즘은 정말 그냥 봐서는 나이를 알 수 없는 없다. 제법 지긋한 연세의 분들이 곳곳에서 일하시는 모습을 본다. 가장 쉽게는 경비아저씨들, 노란 조끼를 입고 공익 근로를 하시는 분들, 각종 가게에서 서빙이나 카운트를 보시는 분들, 새 아파트에 하자 보수하러 오시는 분들 중에서도 보인다. 나이가 들었다고 노동력을 상실한 것이 아닌 만큼 할 수 있는 한 가장 오래 일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일이 삶이고, 이는 곧 경제력과 직결되고, 생산적인 활동이 의욕을 불러 일으킨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은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유효기간이 다하면 무엇을 하는 게 좋을까? 현재의 일이 끝나기 전 새로운 일의 출발을 준비해야겠다. 할아저씨, 할아줌마들께 뜨거운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할아저씨 #할아줌마 #시니어 #상북면 #석계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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