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물생각

잃어버린 물건은 찾지 않아야 찾는다

맹물J 2024. 10. 25. 22:31

분명히 집 안 어딘가에 두었는데 못 찾겠다. 양조간장을 하나 여분으로 쟁여뒀는데 어디다 둔 건지 당체 보이지 않는다. 간장만이 아니다.  다양한 물건들을 찾아 헤맨다. 최근, 밀가루 반죽을 미는 봉, 의료용 반창고, 스템플러 등등. 찾아 헤매는 시점이 당장 필요한 때라 더 답답하다.

이런 경험이 한두 번이 아니다 보니 나름 요령을 터득했다. 일단은 물건마다 각자의 자리를 정하고 사용 후 바로바로 챙겨 넣는 것이다. 그런데 이사를 하면서 미처 자리를 잡지 못한 물건도 있고, 자리를 잡았으나 그 자리가 어딘지 헛갈리는 경우도 있다. 대략 난감이다. 기필코 당장 찾고야 말겠다고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보자'는 심정으로 덤비면 여러 모로 손해다. 일단 이 물건들은 찾을수록 더 꽁꽁 숨는 경향을 보인다. 나한테만 그런 것인지. 여기저기 서랍을 열고, 닫고를 반복할수록 스트레스 지수는 급상승이다. 건강에도 좋을 게 하나 없다.

다 부질없는 짓임을 한시라도 빨리 깨닫고 찾기를 멈추는 것이 좋다. 포기는 빠를수록 좋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먹으면 된다. 없으면 없는 대로 대안을 찾아 그 순간을 모면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다. 찾지 않을 때 찾긴다. 무심의 상태일 때 말이다. 이런 사례가 몇 번 반복되다 보니 찾는 물건이 잘 나타나지 않을 때는 그 어느 때보다 빨리 마음을 접는다. 집안에 둔 물건은 99% 집 안에 있기 마련이다. 당장 소용에 닿지 않아서 문제인 것일 뿐.

두 어 달전! 친정엄마가 전화를 하셨다.
"일요일에 집에 왔을 때 엄마 시계 못 봤나?"
"못 봤는데, 어디 다 뒀길래요?"
"요새는 잘 안 끼게 될 것 같아서 어디 넣어둘라고 식탁 위엔가 소파 위엔가 잠깐 두고 마당에 갔다 왔는데 없다."

엄마 시계 아님


엄마 시계는 특별하다. 큰오빠가 친구들과 계를 해서 모은 돈으로 금줄을 선물해 준 것이다. 얼마나 애지중지 보관하시는지 익히 알고 있는지라 엄마 맘이 어떨지 짐작이 된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나의 지론대로 말씀드렸다.
"엄마, 그거 없어도 살잖아. 너무 찾지 말고 있어 봐. 그냥 지내다 보면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날 거야."

엄마는 그 시계를 찾기 위해서 집에 있는 서랍이란 서랍은 다 뒤집어 엎어보았다고 한다. 서랍 뒤로 넘어갔는가 해서 말이다. 잘 빠지지 않는 서랍은 드라이브로 흠집을 내어가면서 까지 꺼내고 말았단다. 그런데 며칠 전 다시 전화가 왔다.
"갱아, 시계 찾았다."
"응? 어디서?"
"너거 아부지가 위생팩 통에 넣어놨다."

사연인즉슨 아버지가 장난 삼아 식탁 위에 있는 엄마시계를 주방 서랍 속 위생팩통에 넣었다. 하필이면 자주 사용하지 않는 아주 큰 사이즈의 위생팩통에 넣은 것이다. 병적이다 싶을 정도로 단기기억력이 떨어지고 있는 아버지는 자신의 장난을 완전 잊고 엄마가 그렇게 찾아 헤매어도 힌트를 줄 수 없었던 것이다.

"엄마 횡재했네. 맛있는거 사 잡주세요."

#물건찾기 #그냥둬라 #마음비우기 #잃어버린물건 #금줄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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