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 한켠에 놓여있는 화이트보드에 딸램이 뭔가를 그려놨다. 자세히 들여다보며 뭔가를 보고 베껴그린건가 했다. 요즘에는 하도 듣도 보도 못한 캐릭터들도 많고, 나는 금시초문인데 핫 트렌드라는 얘기들도 곧잘 듣는다. 나같은 사람을 속여 웃음거리 만들기는 식은 죽 먹기일게다. 어딘가에서 본듯 아닌듯 고개만 갸우뚱하는데 딸램이 스스로 생각해서 그린 이모티콘이라고 한다.
내 딸이지만 나와는 참 다른 딸램은 친구를 너무 좋아한다. 아니 사람을 좋아한다. 학교에서든 학원에서든 언니, 친구, 동생 가리지 않고 쉽게 사귄다. 무슨 일이라도 혼자보다는 누군가와 함께 하기를 좋아하고, 한명보다는 두명이, 두명보다는 세명, 네명이 좋단다. 끊임없이 조잘조잘 무슨 얘기든 한다. 딸에게 소통 없는 세상은 앙꼬 없는 찐빵이다. 그런 딸이 두어달 전에 스마트폰이 생기고, 친구들과 카톡하는 재미에 푹빠진 모양이다. 아무런 제제를 하지 않았더니 하루 카톡 사용시간이 7시간이 넘는단다. 깜짝 놀란 아빠가 하루 1시간으로 타임제한을 걸었다. 대화를 하면서 필요한 이모티콘을 저렇게 그려놓고는 등록하는 방법을 알면 좋겠다고 한다.
이런 딸의 모습을 보면서 새삼 격세지감을 느낀다. 우리때와는 달라도 너무 다른 놀이 문화와 생각의 차이가 있고, 생산활동의 도구도 다르다. 예전 같으면 만화를 보거나 컴퓨터 게임을 하는 것은 나쁜 행동으로 인식했다. 그런데 만화 비슷한 것을 그리다니 그 당시 일반적인 부모라면 적극 말릴 일이다. 그런데 요즘은 어디 그런가? 내 아이가 유명한 웹툰 작가라면? 프로 게이머라면? 유명한 이모티콘 제작자라면? 예전에는 미처 생각지 못했던 새로운 직업이 만들어지고, 알고보면 1인 기업가도 무수히 많다.
누군가에게 고용되고 싶은 것이 아니라면 좋은 학벌도 스펙도 그닥 의미 없다. 그러나 아직 완벽히 그렇다고 하지는 못하겠다. 그래도 어느 대학 출신이라고 하면 긍정적인 기본점수를 주고 시작된다는 느낌이 있다. 하지만 우리 딸램이 성인이 되었을 때는 그마저도 훨씬 사라질 것이라는 확신은 있다.
이런 저런 생각들이 많다보니 교육의 방향성도 헛갈릴 때가 있다. 어쩌면 지금이 과도기가 아닐까 싶다. 이러나 저러나 결론은 아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게 하고싶다. 손흥민의 아버지 말씀처럼 "축구를 좋아하면 프로로 나가라. 만약 그렇게 되지 않으면 생계를 위해 최소한의 일을 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축구를 하라."
이래도 살고 저래도 산다. 그러나 딸에게 말하고 싶다. '이왕이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순간순간의 기쁨, 즐거움, 행복을 즐겨라. 뭔가를 이루고 싶어도 그 과정이 즐거움보다는 고통이 더 많다면 그것마저도 다시 고민해보라.'
#이모티콘 #딸램사랑 #하고싶은일을하면서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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