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물생각

잠, 똥, 밥

맹물J 2023. 2. 28. 23:45

갓 태어난 100일 미만의 애기가 우는 이유는 뻔하다. 특별히 뭔가 병이 있는 게 아니라면 배가 고프거나 똥을 싸서 찝찝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잠 투정이다. 초보엄마는 이 뻔한 3가지를 제 때 파악하지 못해서 매번 아기를 울린다. 우는 아기를 안아서 우쭈쭈 달래며 왜 우는지 모르겠다며 한탄을 한다. 하루에도 수십번을 반복하다보면 스트레스가 머리 끝까지 올라오고, 몸은 지쳐 파김치가 된다. 사지 선다형도 아니고 삼지 선다형인데 그렇게 딱딱 맞추기가 쉽지 않다. 무슨 마법에라도 걸린 것처럼 헤맨다. 그러나 아이를 몇명씩 키워본 엄마들이나 할머니들은 딱 보면 척이다. '아이고 새댁아, 얼라가 지금 잠이 오네.' '어구 어구~ 이쁜 아가 왜 우나? 에구 배고 고프거만은.' 아가와 일심동체라도 된 것일까? 우는 모습만 봐도 아기가 뭘 원하는지 척척박사다.  


양산시립도서관에는 상호대차라는 훌륭한 시스템이 있다. 필요한 책을 검색해서 상호대차 신청을 하면 본인이 살고있는 아파트내 작은도서관까지 배달해준다. 도서관 사서는 상호대차 신청이 들어오면 먼저 책을 찾는다. 제일 먼저 서가에 꽂혀있는지 찾아본다. 거기에 없으면 신간코너에 보통 있다. 거기에도 없으면 예약한 자료 중에 있다. 예약하신 분이 약삭빠르게 취소를 하고 상호대차로 돌린 것이다. 이것도 역시 삼지 선다형이다. 이 일에 서툰 나는 잠.똥.밥에 빙의가 된 것처럼 비슷한 패턴을 반복하게 된다. 때론 서가에 버젓이 꽂혀있는 책도 이용자가 몇칸 건너에 꽂아두고 가버리면 헤매기 일쑤다. 그러나 베타랑 사서선생님은 애기 몇은 낳아본 엄마처럼, 손주 여럿을 둔 할머니처럼 척척박사다. 찾다 찾다 안돼서 다른 선생님께 토스하면 1~2분이면 족하다. '이런~ 나는 애꾸눈인가!' 한탄이 절로 나온다.

그 뻔한 일에서도 다양한 미세한 변화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것을 얼마나 잘 캐치해내느냐가 숙련공과 아닌 사람의 결정적 차이다. 그래서 아무리 단순한 일의 반복일지라도 경력자, 숙련자들을 더 대우해주어야 하는 것이다.

한 때 프로그래머로 일을 한 적이 있다. 한국에서는 대학을 졸업하고 프로그래머로 job을 잡고 30대를 거쳐 40대가 되어도 관리자가 되지 못하면 더러워서라도 그만두어야 한다고 했다. 박봉에 밤새기를 밥 먹듯하는 대표적인 3D 업종으로 분류되었다. 그 때가 2000년대다. 그 당시 미국에 머물 때 정말 놀라웠던 기억은 기업에서 프로그래머를 1명 고용하는데 억대 연봉을 줘야한다는 거다. 우리나라와 사뭇 다른 대우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무슨 일이든 그렇겠지만 전문성이 있어보여도 막상 그 속에 들어가서 일을 하다보면 결국 반복된 일이 많다보니 시쳇말로 노가다가 되기 십상이다. 프로그래머 역시 마찬가지여서 큰 대우를 못받는게 당연하다고 스스로의 일을 폄하했었다. 같은 업계에서는 노가다라고 표현하지만 그분야를 모르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함부로 범접할 수 없는 엄청난 일이다. 선진국으로 갈수록 경력자, 숙련공을 아주 높게 대우해주는 데 참 옳은 일이란 생각을 했다. 그치만 요즘은 과연 그렇게만 볼 수 있을까 싶다. 아무리 난이도가 높아도 규칙성이 있고, 반복적인 일은 로봇이 훨씬 정확하고 실수도 없어 굳이 인간 노동자가 필요치 않으니 말이다.

세상이 변하니 생각도, 가치도 변할 수 밖에 없다.    

#경력자 #숙련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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