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물생각

폰을 잊자

맹물J 2025. 5. 16. 12:25

미용실에 갔다. 원장님이 나의 머리를 매만지며 TV 드라마를 힐끔힐끔 보신다. 

"어머나 남편이 죽었구나. 로또 당첨됐는데 죽어버렸네. " 

"드라마에요?"

"네. 하도 스토리가 속 시끄러워서 안 보다가 다시 보니까 그 새 남편이 죽어버렸네요. "

"로또 당첨된 것이 드라마로도 나와요?"

로또는 왠지 긴 드라마보다는 단편의 소재일 거라 생각하는 나에게는 의아했다.

 

나도 모르게 원장님 눈길을 따라간다. 갑자기 남편이 죽고 홀로 남은 아내는 남편의 죽음을 애도할 틈도 없다. 살고 있던 집은 경매에 붙여지고, 남편이  45억짜리 건물을 팔았다는 것을 알고 거래를 맡았던 부동산을 하는 남편 친구를 찾아간다. 그 친구는 남편이 30억에 급매로 팔았다고 한다. 선금 10% 외에 27억을 돌려줘야 함에도 이미 주었는데 누구한테 사기를 당한 모양이라고 한다. 당첨된 로또도 친구와 나누기로 했으나 어쩌고 저쩌고. 단 몇 분 만에 나의 정신은 안드로메다로 간다.

 

사실 이와 유사한 정신 상태를 최근 자주 경험한다. 누군가 오장육부가 아니라 칠부쯤 된다고 하는 스마트폰 얘기다. 아침에 폰에서 울리는 알람으로 눈을 뜨고,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폰을 잡는다. 알람을 끄기 위함도 있지만 밤새 주가가 어떻게 바뀌었나, 새로운 뉴스는 없는가, 곧 있을 대선은 어떻게 흘러가고 있나 궁금해서다. 그리고 물 한잔을 마시고 식탁에 앉아서 유튜브를 켜면 온갖 나의 관심사들을 단 제목들이  '눌러! 눌러!' 아우성이다. 원래 아침루틴으로 만들고자 했던 책 읽기 시간이 자꾸 좀먹는다. 아침 시간만이 아니다. 사실 다시 잠들 때까지 거의 매 순간 내 옆에서 유혹하고 있다. 바보상자라고 하는 TV보다 어떤 면에서는 더 위험하고 더 나를 바보로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는 좀 변화를 주어야겠기에 이런 글을 쓴다. 단순한 삶이 좋아서 시골로 이사를 왔건만 매 순간 나의 선택은 단순함보다는 어지러움을 선택한다. 그래서인지 없던 두통이 생겼다. 우선은 폰과 거리 두기부터 시작해야 한다.

"가까이하기엔 넌 너무 요물이야."

 

 

#스마트폰 #tv드라마 #어지럼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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