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서 둘러보다 박완서선생님의 에세이를 발견했다. 제목은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이다. 1970년부터 2010년까지 생전에 쓰신 에세이 중 일부를 추린 글이라고 한다. "생각을 바꾸니"라는 소제목으로 '나는 노래를 잘 못한다.'로 시작하는 글이다. 나도 노래를 잘 못하는 사람이라 완전 공감되는 글이다. 학창 시절 억지로 노래를 불러야 할 때의 곤혹스러움을 생각하면 지금도 노래방 가는 것을 싫어한다. 선생님은 지인들과 본의 아니게 노래방까지 가게 되었을 때 에피소드를 얘기하신다.

집요하게 노래 부르기를 종용하는 노래방 멤버들에게 "느네들한테 노래할 자유가 있는데 나한테는 왜 안 할 자유가 없냐?'하고 외쳤다고 한다. 너무 진지하게 외친 나머지 서먹해진 분위기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고. 그렇게 다음 날까지 우울한데 오랜만에 친구에게 걸려온 전화에 하소연한다.
"나는 왜 노래도 못할까?"
친구가 말한다.
"네가 노래까지 잘하면 어떡하게."
그 한마디에 기분이 단박에 밝아졌다고 한다.
그래 박완서선생님 같은 분에게 글쓰는 재주 외에 또 다른 재주가 있다면 조물주는 정말 불공평하다 느껴질 것 같다. 노래를 잘하지 못해서 불편했던 적이 많았던 나는 딸램은 이런 나를 닮지 않길 바랐다. 다행히 이 바람은 이뤄진 것 같은데 수 감각이 없는 걸 보고는 왜 이렇게 당연한 걸 모르냐며 답답해 한다. 이것도 저것도 좋은 건 다 갖겠다는 건 욕심이겠지.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는 것과 수학을 좋아하는 것. 어느 것이 삶에 더 도움이 될까? 학창시절을 생각하면 후자이고, 긴 인생을 생각하면 전자일 것 같다. 100살도 더 살지 모르는 긴긴 인생인데 딸램의 타고난 재주에 감사할 일이다. 그러나 수학은 당장 코 앞에 닥친 일이고 보니 갑갑하다. 평정심을 찾으며 현재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선택해야 한다. 노래 부르는 것이 재능이 듯이 수학도 공부도 재능이라고 한다. 물론 타고난 재능이 없어도 어느 정도는 극복이 되는 부분도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각 분야별로 재능이 있는 사람을 선택적으로 교육할 수 있는 환경이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 교육계는 개성과 재능을 무시하고, 무조건 모든 과정을 모든 학생이 이수하게 하니 학생도 선생도 괴로운 일들이 생긴다.
내가 수업하는 몇 안되는 학생들에게 얘기한다.
"고3까지 5년 남았네. 5년만 잘 지내보자. 이 시기만 지나면 너의 세상이 펼쳐질 거야."
뒷 말에는 왠지 자신 없지만 그래도 힘을 주고 싶어 말한다. 중1밖에 안된 학생이 숙제하고 공부하느라 새벽 2시에 잤다며 정작 수업을 받으러 와서는 졸려하는 모습을 보면 안쓰럽기도 하고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기도 하다.
여야 든 둥 잘 사는 삶은 타고난 대로 생긴 대로 꼴 대로 사는 것이라 생각하는 일인이다. 말하자면 타고난 그릇대로 팔자대로 사는 것이다. 그걸 모르고 억지로 뭔가를 하려 할 때 괴롭고 힘든 법이다. 딸램도 스스로를 잘 알고, 자신의 길로 나아가길 바랄 뿐이다.
#박완서 #모래알만한진실이라도 #노래방 #노래할자유 #노래안할자유 #팔자 #생긴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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