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생각이 났다. 지금은 밤 10시 26분! '이상하네. 마켓컬리에서 주문한 식품들이 도착을 했어야 하는데.' 토요일 이 시간까지도 안 오면 월욜에 온다는 말인가? 뭔가 잘못됐음을 감지하고 앱에 들어가 보았다. 몇 번의 클릭으로 주문목록에 들어가니 '배송완료!' 받은 적이 없는데 배송완료라니. 가끔 예전 주소를 잘못 넣는 경우가 있어 주소부터 확인을 했다. 주소는 맞다. 약간의 안도와 함께 이상하다며 딸램에게 보여줬다.
"엄마, 어제 4시 48분 도착인데? 지금이라도 나가봐."
"벌써 만 하루가 지났네? 전복이랑 소고기를 주문했는데..."
오늘도 몇 번씩 드나든 현관문을 다시 열어본다.
"엄마, 엄마! 이상한데 주소가?"
"그럴 리가? 주소는 맞던데?"
딸램이 손가락을 가리키는 곳에는 '104동 1601호'라고 적혀있다. '그래 맞잖아. 아차!' 우리 집 주소는 '106동 1401호다'.
인터폰을 하기도 너무 늦은 시간이고,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잠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주인이 개봉해서 냉장고에 넣어뒀을까? 문밖에 없으면 벨을 누를 수도 없고 어떡하지? 메모를 남기고 와야 하나? 내일 아침 적당한 시간에 인터폰을 하는 게 낫겠지? 문밖에 그대로 있어도 걱정이네. 그랬으면 전복은 이미 죽었겠지.' 온갖 시나리오를 쓰며 104동 16층에서 엘베문이 열리는 순간, 감사와 당혹감이 교차한다. 아이스박스는 테이프도 뜯지 않은 그대로 문 앞에 놓여있고, 현관문에는 미입주 상태임을 알 수 있는 보양재들이 그대로 붙어 있다. 이제 생각은 한 가지로 모아진다. '전복은 어떤 모습일까? 소고기는?'
생각보다 가벼운 아이스박스를 들고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가장과 딸램이 버티고 서 있다. 샤워를 하고 나와서 뒤늦게 소식을 들은 가장이 말한다.
"왜 맨날 일처리를 그리 하시오."
딸램이 거든다.
"전복이 들었다고 했는데"
남편이 받는다.
"죽었겠네."
급히 커트칼을 찾아 테이프를 쫙쫙 그어 뜯어내고 뚜껑을 열었다. 충분한 물에 잠긴 전복! 얼른 만져보고 안도하며 말한다.
"아직 물이 차갑네요?"
싱크대로 가져와 가위로 비닐봉지를 자르고 쏟아내니 전복이 움찔한다.
"아직 살아 있어요! 내가 자기 생각해서 제일 좋은 걸로 샀거든."
전복죽을 먹고 싶다는 가장을 위해 할인상품도 있었지만 비싸도 특상품으로 주문한 게 신의 한 수다. 싱싱했기에 이틀을 비닐봉지 채 아이스박스 안에 갇혀 있어도 살아있었겠지. 살아있어 준 전복에게 감사함을 담아, 그리고 너희의 희생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를 일깨우는 마음의 묵념을 드리고 새 칫솔을 꺼내와서 깨끗이 손질했다. 나도 모르는 새 새끼손가락이 살짝 베이는 훈장을 달아가며 완성한 전복죽!
아침 식사로 한 그릇씩 먹으며 딸램과 가장의 소회가 다르다.
"전복살이 안 보이면 좋겠어. 살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게 먹으면 더 잘 넘어갈 것 같아."
"살이 씹혀야 맛있지. 며칠 전 죽집에서 전복죽 먹었는데, 살을 얼마나 얇게 썰었는지 예술이더라."
가장을 생각해서 편 썰기 그대로 넣어려다가 딸램을 생각해서 나름 잘게 썰었것만. 두 사람을 동시에 만족시키기는 힘들다.
여야 든 둥 소기의 목표대로 우리 식구들의 입에 무사히 들어가서 제 역할을 충실히 이행해 줄 전복에게 무한 감사를 보낸다. 아울러 싱싱하게 보내준 마켓컬리에도 감사하고, 그야말로 데드라인일 수도 있었던 어제 그 시간, 생각을 떠올려준 나에게도 감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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