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동 매화 축제가 시작되는 날이다. 철 따라 꽃 따라 소풍 가는 걸 좋아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붐비는 곳은 절대 피하고 싶은 사람들. 아침 일찍 8시경 시어른들을 양산으로 오시게 하고 도시락을 싸서 원동으로 간다. 이른 출발임에도 평소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좌회전하지 마시오.' 안내판은 서있어도 아직 길을 막아놓진 않았다. 잽싸게 좌회전을 해서 목적지로 향한다. 우리는 축제 장소가 아닌 우리만의 아지트를 찾아가는 길이다. 원동초등학교를 통과해서 팔각정으로 올라가면 사람들이 잘 모르는, 멋진 매화향연을 즐기며 쉴 수 있는 곳이다. '어라 막아놨다.' 우리의 기대와 달리 학교 앞을 막아놔서 아예 진입할 수가 없다. 주변에 주차라도 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주차장은 한참 멀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쭉 더 따라 직진해서 가야진사까지 왔다.
가야진사를 소개하자면 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 용당리에 있는 신라시대 사당으로, 나루터 신을 모시는 제당이다. 1983년 경상남도 민속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신라 눌지왕 때 가야국을 정벌하기 위해 왕래하던 나루터인 가야진이 있는 곳이다. 매년 봄마다 용신제를 지낸다. 나루터답게 오후 산책 중에 보니 주막 같은 간이음식점이 서고 있다. 1500년 전 나루터로 이용되던 곳이 지금은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의 정거장이 되어있다. 자전거 도로가 아주 잘 닦여있고, 화장실, 휴게실, 음식점 등 쉼터 역할로 잘 구성되어 있다. 넓은 뜰에서 쉬기도 좋고, 강변을 따라 산책하기도 안성맞춤이다. 강 건너 맞은편은 김해 상동면이다. 맞은편 넓은 강변에서도 무슨 행사가 한창이다. 마이크를 통과한 사회자의 목소리가 우렁차게 들린다.
아직 바람이 차갑다. 우리는 넓은 뜰에 동백나무가 찬 바람을 막아주는 양지바른 곳에 쉴 곳을 마련했다. 무뚝뚝 감자칩과 망고젤리, 커피로 따뜻하게 몸을 녹이고 심심한 입도 달래준다. 어머님은 일찍 나오느라 아침 운동을 못했다며 빠른 걸음으로 걷기 시작하신다. 아버님은 어디서든 메모하기 바쁘시고, 나는 책을 꺼내 쬐끔 읽었다. 부녀는 폰을 들고 정답다. 그렇게 오전을 보내고 12시다. 즐거운 식사시간이다. 따뜻한 밥에 김, 계란말이, 김치볶음, 멸치볶음이 반찬이다. 나와서 먹는 밥은 찬을 가리지 않는다.
식사 후 함께 산책을 시작한다. 어머님은 곳곳에 푸릇푸릇 돋아난 쑥을 보며 뜯으신다.
"쑥도 종자가 여러 가질까요? 자라는 모양이 달라요."
"땅이 달라서겠지. 강가 쑥은 길쭉길쭉해서 손으로 뜯기도 좋은데 저런 건 칼이 있어야겠다."
바로 강가 마른 나뭇가지 아래 돋아난 쑥은 키가 크고, 산책로 바로 옆으로 굳은 땅에 돋아난 쑥은 땅꼬마같이 작다. 땅꼬마 쑥 바로 옆에는 민들레도 땅바닥에 딱 붙어 한송이 피었다. 같은 씨앗이라도 어떤 땅에 자라냐에 따라 이렇게 다르다. 같은 땅에 자라도 씨앗이 다르니 또 생김이 천양지차.
계속 강변을 따라 걷다 보니 100년은 되지 않았나 싶은 목련나무를 발견했다. 이제 살짝 벌어지려 하는 꽃봉오리가 예술이다. 저 큰 나무의 꽃봉오리를 일일이 헤아리기는 불가능하다. 자연이 주는 감동을 글로 다 표현할 있는 재주가 없음이 애석하다.
걷다 보면 넓은 터에 줄지어 매화나무를 심어놓은 풍경도 보인다. 몇 년 뒤면 훨씬 풍성한 볼거리가 될 것 같다.
1~2주 뒤에 다시 와도 좋겠다. 좀 더 따뜻한 햇살아래 지는 매화, 피어나는 산수유와 목련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니.
#가야진사 #원동매화축제 #나루터 #매화 #목련 #산수유 #가족나들이 #소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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