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물생각

한때

맹물J 2023. 6. 21. 23:03

모든 것이 한때다. 꽃봉오리가 피어나기 직전처럼 10대의 뽀송뽀송, 촉촉함과 탱글탱글함을 담은 푸릇푸릇함도 한때이고, 봉오리에서 살짝 피어난 장미처럼 타고난 기질이 그대로 드러난 성숙미와 젊음이 한창 피어나는 20대도 한때다. 그 후 만개한 꽃이 시들어 지고, 떨어지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물론 흙으로 돌아가 다시 꽃으로 환생한다고 보면 무한 궤도를 달리고 있다고 보아야할지도 모르겠다.


태어나 10대가 되기전에는 기억도 온전치 않지만 드문 드문 떠오르는 이미지를 조합해보면 그저 본능에 가깝게 산 시기였던 것같다. 맛있는 것이 있으면 내가 먹고 싶었고, 좋은 것은 내가 갖고 싶었다. 어른들에게 잘 보이고 싶은 욕심에 대체로 부모님, 선생님 말씀을 잘따르는 착한 아이였다. 칭찬을 듣기 위해 쑥을 캐서 이웃집에 나눠 드리기도 했다. 부모님께서 싸우시면 무서웠고,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에 대한 인식 자체가 없었다. 그러니 이런 상황이 지속될 것인지 말 것인지 생각해보지도 못했던 시기다.

10대에 접어 들어서는 여전히 타고난 기질이 그러했는지 모범생처럼 살았다. 욕심도 생기기 시작했다. 시험을 치면 잘 보고 싶었다. 다른 삶은 생각해보지 못했고 그저 학생이니 공부를 열심히 하려고 애썼다. 그러나 성적은 그닥이다. 여전히 싸우시는 부모님이 무섭고 싫었다. 조금 의식이 성장했는지 벗어나고 싶어했다. 이 때도 여전히 나의 다른 선택이 나의 삶을 파격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해보지 못했다.

그냥 저냥 현실에 닥친 일들을 해내며 20대가 되었다. 대학을 들어갔고, 졸업을 했고, 취직을 했다. 물론 짧은 한문장으로 끝낼 만큼 단순하게 진행되진 않았지만 그 때도 나에게 30대, 40대가 올거라고 생각해보지 않았다. 아니 생각은 했으나 와닿지 않았다. 그러나 나에게도 30대가 왔다. 남들보다 늦은 결혼을 하고, 아이도 생겨서 나는 엄마가 되었다. 아이가 아주 어린데 나는 40대가 되었다. 아이에 대한 책임감, 내 삶에 대한 책임감으로 나름 맹렬히 40대를 보냈다. 애쓴 만큼의 성과를 내지는 못했고, 어느 덧 50대가 되어 있다.    

나에 대한 인식이 생기기 시작한 20대, 30대, 40대를 거쳐 오면서 그 때는 그 삶이 영원할 줄 알았다. 머리로는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으되 가슴으로는 쭉 젊음이 있는 그 삶이 지속될 줄 알았다. 그러나 50대에 들어서고보니 어느 것도 영원한 것은 없다. 변화하지 않는 것은 없다. 팽팽했던 얼굴에는 하나 둘 주름이 늘어나고 깊어진다. 탄력있던 팔다리의 근육은 힘없이 처져간다. 까만 머리는 어느 새 흰머리가 한 둘 보이기 시작하더니 벌써 온통 백모로 변했다. 어느 것 하나 옛날 옛 적 그 때 그 시절 것이 없다.

호칭도 변했다. 꼬마에서 학생으로, 숙녀로, 아가씨로, 새댁으로, 아줌마로. 호칭의 변화와 발 맞춰 나가는 것은 신체의 변화다. 단순한 크기의 성장이 아닌 화학적 변화를 동반한 성장의 마디마다 적응하고 받아들이기가 쉽지는 않았다. 2차 성징이 있는 사춘기에 적응하고 나니 출산으로 체형의 변화가 생기고, 이제는 노화로 변화의 징후를 강하게 느낀다.  

고 이어령교수님의 말씀처럼 '젊은이는 늙고, 늙은이는 죽는다.' 한때 소위 잘나가던 사람도 질 때가 있다. 누구나 예외가 없다. 그걸 당연히 예상하고 준비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세상 참 허무하다가 되고 만다. 누구나 겪게 되는 생로병사를 나만은 그럴 일이 없다는 듯이 자신 만만하게 살아갈 때가 있다. 특히 젊은이들이 그렇다. 누구는 그 젊음이 없었을까? 나도 젊어봤다.

이제 늙어가는 문턱에 서고보니 영원할 것 같던 그 시기들이 한때란 것을 알겠다. 그러니 최선의 삶은 부자로 살거나 부자나 성공을 지향하는 삶이 아니라 순간을 살아가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래야 더이상의 후회는 없을 것이다. 늦은 밤 오늘의 글을 채우기 위해 지난 시간을 더듬어 보고 생각에 몰입하는 이 순간을 살며 즐기는 것이다. 이것이 진정 나다운 삶이다. 이것이 나의 길이다.  

#한때 #젊은이는늙고늙은이는죽는다 #변화 #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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