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물생각

진정서

맹물J 2023. 10. 10. 06:24

최근 직접 경험한 일이다. 3개월 전 부산 북구에 위치한 모수학원에 파트타임 강사로 학생들을 가르쳤다. 2달 수습 후 다시 임금 조정을 하면서 원장님의 제안과 나의 기대가 너무 큰 갭이 있음을 알았다. 그래서 더 이상 지속될 수 없는 관계임을 알고 새로운 강사를 구할 때까지 한 달을 더 하고 그만두기로 했다. 불편한 한 달이지만 나름 최선을 다해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필요하면 더 일찍 출근하는 불편함도 감수하며 보강도 마다하지 않았다.

추석연휴가 지난 후 통장에 급여 입금 알림메세지가 왔다. 그 내용을 확인 후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뭐지? 원장님이 실수하셨나?' 이런 실수를 하실 분이 아니란 걸 알았기에 아둔한 머리로 아무리 굴려봐도 당최 이해가 안 되는 금액이다. 당연히 많아서가 아니라 터무니없이 적었기 때문이다. 파트타임 임금이라 다 받아도 그다지 많지 않은 금액인데 35만 원 정도가 빈다.
'어떻게 이런 계산이 나왔을까?'
잘 시간이 다되어 들어온 메시지라 잠자리에 누워서도 이런저런 생각이 든다.
     
다음 날 아침! 은아쌤에게 연락했다.
"은아쌤, 물어볼 것도 있고,  차 한잔 할 시간이 되세요?"
"아~ 우리 사무실로 오실래요?"
전화하자마자 아침 10시까지 바로 오셔도 된다는 말씀이 참 고맙다. 불편한 마음을 지체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은아쌤은 '와이에스나비' 독서모임 멤버이자 '임금 체불이나 불법 해고 등'을 당한 힘없는 노동자들의 억울한 사연을 들어주고, 해결책도 상담해 주는 멋쟁이 여성이다.

석 달 전 그 학원에 파트타임 강사로 채용되었을 때 나의 임금을 듣고는 말이 안 된다고 했다. 주휴수당은 당연히 받아야 하는 것이고, 1년 이상 계약하지 않으면 수습기간을 두어 임금을 적게 책정하는 것도 불법이라고 했다. 이 모든 것을 챙겨 받는 것이 나의 당연한 권리라고 했지만 원장님과 그런 얘기를 나눈 바가 없기에 2 달이니 그냥 감수하기로 작정을 하고 일은 시작되었다.

마지막 급여가 납득이 되지 않아 급여명세서를 보내달라고 문자를 보냈다. 문자 대신 전화가 왔다. 40여 분동 안 전화기 너머로 들려온 원장님의 계산 방식은 독특했다. 처음 두 달은 시급을 받는 강사에게 근무 일수가 21일이든 22일이든 한 달이면 무조건 20일 기준으로 계산을 해주고, 마지막달은 끝나는 날이 연휴이니 일수로 계산한 18일만 유효하며, 그나마도 하루 20~30분 쉬는 시간은 시수에서 다 빼는 식이다.
'아전인수도 유분수지. 그렇게 살아 부자 되시겠습니다. 마냥 웃고 친절하게 대했더니 나를 물로 본 건가?'

나의 요구는 이러했다. 처음부터 월 단위로 하실 거면 끝까지 그렇게 하시고, 일수로 계산하실 거면 끝까지 일수로 계산하시라. 40여분을 본인의 계산 방법이 당연하다는 듯이 말씀하신다. 어쩔 수 없다. 은아쌤과 작성한 진정서를 히든카드로 꺼내는 수밖에. 그렇지 않았다면 40분이 아니라 4시간 전화통화로도 부족했을지 모르겠다.


진정서의 일부


진정서의 요지는 주 5일을 꽉 채워 근무했으니 주휴수당을 지급해야 하고, 1년 이상 계약이 아니니 수습기간을 두어 임금을 낮춘 것도 돌려받아야 한다. 근로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은 것, 급여 명세서를 지급하지 않은 것도 시정해 달라는 것이다.  

처음부터 이 진정서를 노동부에 제출할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매정하게는 하지 못했다. 그렇게 했더라면 100만 원이 훌쩍 넘는 돈을 돌려받게 되었을 것이다. 먼저 원장님과 대화를 시도해 보고 불통이면 '내용증명'을 보내고, 이도 안되면 '진정서'를 제출하자는 시나리오를 갖고 연락을 취했다.  물론 내용증명이니 진정서니 그전에는 하나도 몰랐다. 은아쌤의 도움으로 얻은 귀한 이름들이다.

고장 난 라디오처럼 같은 말을 반복하는 원장님의 말씀을 더 이상 듣고 있을 수가 없다. 위 진정서의 내용을 대화 말미에 슬쩍 언급했더니 급반전이 일어난다.
"전쌤 말씀대로 입금해 줄 테니 이렇게 끝내요."
통화가 끝나고 곧바로 부족분이 입금되었다.

나의 신분이 근로자라면  노동법(근로기준법)에 대한 기초 지식은 갖고 있어야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겠다. 이런 거 공부하기 귀찮으시다면 은아쌤 같은 분을 찾아가 보시라. 각 지차제마다 무료로 상담해 주는 사무실이 곳곳에 있다. 이런 곳은 문턱이 낮아 누구라도 환영해 준다. 단 적어도 내 권리는 스스로 찾겠다는 의지는 갖고 가셔야 한다.  

혹여 저처럼 억울한 일을 당하고도 대처 방법을 몰라 분통만 터트리고 계실 분이 있을까 하여 긴 글 올려 봅니다. 주변에 이런 분들이 있다면 꼭 권리를 찾을 수 있게  이 글이라도 공유해 주시길 바랍니다.

"은아쌤~ 많이 많이 감사해요. 쌤 덕분에 통화시간도 단축하고, 나의 분노 게이지도 불필요하게 높이지 않을 수 있었어요. 한편으론 오전 내내 쌤이 수고해 주신 것도 있고, 저의 후임자를 위해서도 그렇고 이런 얌체 짓을 더 이상 못하게 걍~ 진정서 제출해서 한방 먹일걸 그랬나 하는 아쉬움도 있어요. ㅎㅎㅎ"

#진정서 #노동법 #근로기준법  #주휴수당 #수습기간 #계약서 #노동부 #내용증명 #수학원 #이은아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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