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민성이는 서진이 집 미역국이 젤 맛있다고 하던데요? 집에서는 한솥 끓여놔도 잘 안 먹어요."
"우리 애도 지아이모가 끓여주는 미역국이 젤 맛있데요."
거짓 없는 진실의 입들! 초딩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면 믿지 않을 수 없다. 서진이 엄마 즉 지아이모는 자타가 인정하는 요리계의 큰손이다. 사실 큰손은 아니다. 말하자면 뭐든 조금조금 앙증맞은 양을 고수하는 작은 손이다. 그러나 맛과 비주얼, 맛을 더하는 입담과 사진술은 흉내내기 힘든 재주꾼이다.
"도대체 미역국을 어떻게 끓이길래 애들이 하나같이 맛있다고 해요?"
"별거 안 해요. 그냥 참치액젓 한두 숟가락 넣는 거뿐인데요. 암웨이 한 알 육수에~"
나도 한 알 육수는 써봤고, 그러면 참치액젓이 비법이란 말씀? 멸치액젓이나 참치액젓이나 지들이 그래봐야 액젓이지. 그닥 예민하지 않은 나의 미뢰에게 각종 액젓들은 짠맛 일색일 뿐. 액젓이 필요한 요리에는 모두 멸치액젓으로 통일성을 주었다. 근데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폭풍 검색으로 참치액젓을 들였다. 그리고 좀 더 검색해 보니 멸치액젓, 까나리액젓, 참치액젓을 비교 설명하는 유튜버가 있다. 참 친절한 세상이다. 요약하자면 아래와 같다.
우선 모든 젓갈이나 액젓은 소금에 담가 저장, 발효, 숙성 과정을 거친다. 대부분 젓갈은 2~3개월 숙성 과정을 거쳐 원료가 완전 분해되기 전에 먹는다. 짠맛이 강해서 일명 밥도둑이라 불리는 것들이다. 염장은 냉장고가 없던 시절에 오래 보관하기 좋은 방법이긴 했으나 건강과는 거리가 멀다. 더운 여름 입맛이 없을 때 한 두 번 먹는 거야 괜찮겠지만 늘 가까이하기에는 먼 당신이다.
액젓은 6~24개월 숙성 과정을 거치고, 원료가 완전히 분해된 후 여과장치로 추출한다. 간장 대용으로 사용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멸치액젓, 까나리액젓, 참치액젓 등이 있다. 멸치액젓은 짠맛과 비린맛이 강해서 김치를 담글 때 주로 사용한다. 까나리액젓은 멸치액젓보다 덜하긴 해도 역시 비린맛이 있어 찌개, 국, 파무침, 계란찜 등 담백한 요리에 간장 대신 사용하고, 고기를 재울 때 잡내 잡는 용도로도 좋다. 대망의 참치액젓! 요놈이 요물인 것 같다. 가쓰오부시(참치의 일종인 가다랑어를 찐 다음 훈제를 하고 발효시켜 건조한 식재료 )를 우려서 만들어 비린 맛이 없고 훈제향이 강하다. 짠맛도 있지만 감칠맛, 단맛이 있어서 거의 모든 요리에 만능 간장으로 쓰일 수 있다. 앞서 언급한 미역국부터 각종 나물무침, 겉절이 등에 이용하면 안성맞춤이다. 집밥을 하면서 파는 맛을 내고 싶을 때, 뭔가 2% 부족한 맛을 채우고 싶을 때 쓴다. 혹자는 '요리계의 만능 물약'이라고 한다.
이런 사실을 정녕 나만 몰랐단 말인가. 아직 '요즘 주부' 경력이 부족한 현실을 체감한다. 참치액젓도 브랜드가 많다. 뒷면의 작은 글씨로 된 원재료명을 잘 확인해야 한다. 무늬만 참치액젓이고, 인공 MSG로 맛을 낸 것들도 있다. 나는 급한 마음에 가장 눈에 띄는 빨간색 참치액젓을 구매했다. 그런데 찾아보니 더 건강한 참치액젓도 보인다. 혹시 제대로 된 참치액젓을 아시는 분 있으면 추천부탁드려요.
마침 물미역이 집에 있다. 물미역은 씻는 게 겁나서 마트에 가도 곁눈질로 구경만 하는 친숙하지 않은 식재료다. 그런데 간만에 함께 마트에 간 가장이 장바구니에 덥석 주워 담는다. 어머님께서 자주 해주시는 반찬이라 쉽게 생각하는 것 같다. 어렵게 어머님 흉내를 내어봤지만 역시 맛이 없어서 나만 먹고 있었다. 남은 물미역으로 재주를 부려보리라.
오늘은 나물 파티다. 냉장고에 있는 숙주와 시금치를 씻고, 데치고, 어제 씻어놓은 물미역까지 부뚜막에 올려놓았다. 나물의 기본양념인 다진 마늘, 조선간장, 통깨, 참기름도 준비한다. 오늘의 요물 참치액젓도 당당하게 올려놓는다. 그리고 완성된 나물반찬 세 가지. 퇴근하고 돌아온 가장의 눈이 반짝인다.
"나물 반찬이네. 맛있겠다."
눈으로도 MSG가 보이는 것일까? MSG 맛을 좋아하는 가장의 젓가락이 바쁘다. 내일은 소고기미역국으로 테스트를 해봐야겠다. 나도 주부 9단의 반열에 올라갈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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