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명리학

50년을 살고보니 49년이 후회더라.

맹물J 2023. 1. 19. 21:55

"50년을 살고보니 49년이 후회더라."
<회남자>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고 한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나는 왜 사는가?

이런 질문에 하나도 제대로 답을 할 수 없는 숱한 시간들이 있었다. 잠깐 잠깐 이런 질문을 잊고 살 때도 있다. 나름 뭔가에 몰입했던 적도 있다. 그러나 지나고보면 '그래, 그 때 참 잘했어.'라는 말보다 '그 때 왜 그랬을까?'하는 후회가 더 크다. 자그마치 50년, 반백년을 살았는데도 나는 매번 그랬다.

나를 모르고 살았다. 누군가 '너는 이런 사람이야' 라고 알려주었어도 내가 받아들이지 못했을 것이다. 삶에서 가장 힘든 것이 무엇인가? 바로 나에게 일어난 일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라고 한다. 하물며 내 존재 자체를 모르고, 어떤 모습으로도 받아들이지 못했으니 그 삶이 어떠했겠나? 순간순간이 고통스럽고 힘들었다기보다 물론 그런 순간도 없진 않았다. 한 사건이 휘몰아치고 나면 찝찝함과 개운치 않은 씁쓸함. 이 모든 것이 나를 모른 채로 살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지난 연말께 명리학을 만나고 개안이 되었다고 할까. 심봉사가 눈을 뜬듯 명확해진다. 내가 보이고, 주변의 사람들이 보이고, 우리의 삶이 보이기 시작한다. 명리학을 통해 보이는 나는 부정할 수 없고, 인정이 된다. 나를 알고 살아갈 50년이 기대된다. 지난 50년보다 부자로 살 것이고, 좋은 운이 와서 기대된다는 말이 아니다. 내가 누구인지, 내가 뭘 원하는지, 내가 어디로 가는지 알고 걷는 걸음은 한발짝 한발짝 모두가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설사 그 길이 잘 닦여진 아스팔트가 아니고 때로 거친 자갈길이라 할지라도.

명리학적으로 보면 누구의 인생에나 결핍이 있다. 단지 그 결핍의 성격이 다르고, 시기가 다를 뿐. 나는 왜 저이처럼 부자가 아닐까? 나는 왜 저이처럼 미인이 아닐까? 나는 왜 훌륭한 부모님을 만나지 못했을까? 원망하거나 비교할 필요가 없다. 결핍이 있는 만큼 다른 형태의 보상도 있기 마련이다. 게다가 우리에게는 자유의지라는 것이 있다. 얼마든지 개선의 여지가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시작은 내가 꽃이라면 장미꽃인지, 찔레꽃인지, 배꽃인지를 알고나서부터다. 장미꽃이라고 마냥 좋은 건 아니다. 이쁘다고 먼저 꺾일 수도 있고, 화가 난 여인의 손에 쥐어진 꽃다발이 되어 길바닥에 내동댕이쳐질 수도 있다. 다행인 것은 실은 우리가 꽃이 아니고 인간이기에 얼마든지 자유의지를 발휘할 수 있다는 것에 방점을 두어야 한다.

ps. 정신과 전문의 양창순님의 <명리심리학> 앞 부분을 읽고 공감되는 부분은 인용하면서 나의 생각을 정리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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