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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전암 점심 공양

맹물J 2024. 10. 11. 16:14

지난 토요일 아침 7시 부산큰솔나비 독서 모임이 있었다. M선배님의 감사 나눔에서 노전암 점심 공양에 대해 듣고 꼭 가보리라 맘을 먹었다. 야간 근무를 마치고 퇴근한 가장에게 얘기했더니 이미 알고 있다. 내원사 입구에서 왼쪽으로 가면 노전암 가는 길이 있단다. 집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내원사! 두 사람 주머니를 다 뒤져도 배춧잎 한 장이 없다. 가는 길에 ATM기를 거쳐 노원사입구 주차장에 도착했다.

 

노전암 가는 길은 산행이 아니라 그저 눈에도 귀에도 다리에도 편안함과 휴식을 내어주는 산책길이다. 계곡에 흐르는 맑은 물과 그 청명한 소리는 삿된 마음을 씻어내고 들어오라고 재촉하는 것 같다. 가다보면 한창 익어서 터진, 껍데기가 쩍쩍 벌어진 밤도 도토리도 밟힌다. 우리도 몇 번이고 허리를 숙여 주워보려 했지만 언제나 빈 껍데기다. 먼저 지나가신 분들이 알맹이는 다 주워가신 모양이다. 

 

암자에 들어서서 장독대를 보니 소문낫 맛집인 이유를 알겠다. 여느 절이나 암자 답지 않게 예전에는 20첩 반상을 차려 지난가는 객들을 차별 없이 대접했다. 그 장본인이 비구니 스님이신 능인스님이다. 능인스님은 17세에 출가하여 67년을 수행하시다 작년 84세의 나이로 열반하셨다고 한다. 생(生)에서 멸(滅)로 가는 길에 일주일간 곡기를 마다해, 스스로 선승(禪僧)의 기품을 굳건히 견지했다. 흡사 마굿간 같았던 현재의 노전암을 중창하기 위해 일생을 바치신 대표적 천성산 노비구니스님이었다. 개에게도 말을 놓지 않고, 극진히 대접했다. 노전암 곳곳마다 주인 없는 깨끗한 개집이 많이 보인다. (참고 : 불교닷컴(http://www.bulkyo21.com) )

 

아직도 능인스님의 유지를 받들어 정승스런 갖가지 나물반찬으로 공양을 대접하신다. 공양실에 들러 뷔페식으로 맛깔스럽게 차려진 음식을 카메라에 담고 싶었다. 그러나 오늘은 제사까지 있었던 날이라 왠지 그 엄숙함에 걸맞지 않은 것 같아 사진을 찍지 못했다. 우리 차례가 되어 욕심껏 푸짐히 담아와서 싹싹 맛나게 비웠다. 설거지는 직접해야 한다. 나오는 길에 감사한 맘을 담아 불전함에 살포시  배춧잎 한장씩 넣고  왔다. 

 

공양실을 나오니 주방에 계시던 보살님이 감자 깎는 것을 도와 달라하신다. 잠시 멈칫하다 다른 일행과 함께 열심히 깎아서 드렸더니 인절미와 커피까지 내어주셔서 감사히 먹었다. 나무로 된 작은 의자가 있길래 살짝 앉아봤다. 나중에 그 자리가 능인스님의 지정석이었음을 알았다.

 

참 흡족한 맘으로 내려오는 길. 아까 그 보살님이 어느새 내려오셨는지 밤나무 사이에서 내려가는 우리를 부르신다. 

"밤 가져 가세요. 여기는 사람들이 잘 몰라서 안 주워가는 곳이에요."

주머니 가득 주우신 밤을 받으란다. 아니라고 손사래를 쳐도 많이 있으니까 받으란다. 작은 가방 하나 없이 핸드폰만 들고 간지라 가장이 얼른 시골아지매처럼 티셔츠 앞자락을 벌려 내민다. 주변머리 좋은 가장과 보살님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다. 능인스님이 불러서 노전암으로 왔건만 보살님이 오시고 얼마 지나지 않아 능인스님이 입적하셨다는 말씀을 하시며 돌아서는 보살님의 뒷모습이 자꾸만 아른 거린다. 한 달에 한번 정도는 가보자고 약속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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