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밤 황산공원 산책
"황산공원에서 저녁식사 합시다~"
남편의 카톡이 왔다. 누군가 이 메시지만 본다면 황산공원에 근사한 레스토랑이라도 있는 줄 알겠다. 우리 가족은 오늘은 외식하자 하다가도 "그냥 집에서 ~~~해먹을까?" 한 마디에 "그래 그게 좋겠다."로 결론짓기 일쑤다. 역시나 오늘도 김밥 대신 볶음밥으로 메뉴를 바꾸고, 남편 퇴근 시간에 맞춰 간단히 저녁 식사를 준비한다. 어제 먹고남은 앞다리살 수육을 총총 썰어서 김치볶음밥을 만든다. 쑥국도 데워서 담고, 사과와 오렌지도 썰어서 담는다. 과일을 후식으로 먹는게 좋지 않다고 하는데도 습관이 무서운지라 쉽게 고치지 못한다. 딸램은 허니보이 아빠가 좋아할 거 같아서인지 화이트데이에 받은 초콜릿도 3개 챙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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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역에 내린 남편을 픽업해서 황산공원으로 출발한다. 황산공원은 낙동강변을 따라 직선거리로 왕복을 하면 만보가 나오는 꽤나 큰 공원이다. 가로등이 곳곳에 있지만 어두컴컴한 공원, 혼자라면 이 시간에 나오기 쉽지는 않겠다. 가로등 불빛을 찾아 주차를 한다. 창문을 살짝 내려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차 안에서 먹는 볶음밥은 한 맛을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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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를 마치고 밝은 곳을 찾아 산책을 한다. 저 멀리 오가는 사람 몇이 보일 뿐 딱 우리 세식구만 마음껏 활보할 수 있는 이 길. 하늘에 달도 찾아보고 별도 헤아려 본다. 육안으로는 달을 찾지 못하다가 사진을 찍었는데 달이 보여 깜짝 놀라는 헤프닝도 벌어진다. 가로등이 마치 달처럼 착시를 일으킨 것이다. 세상 못 믿을 것이 사람 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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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공간 다른 느낌. 같은 곳을 남편과 딸램이 찍은 사진이 다른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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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이 한창일 때 장관을 이루는 벚꽃거리에 목련 한그루가 만발이다. 가장 절정의 시기를 우리가 만끽하는 행운을 얻은 것이다. 목련이 힘을 잃을 때쯤 벚꽃이 교대로 피어날 준비라도 하는 듯 봉우리를 살짝 맺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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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갑작스런 제안으로 우리는 이런 호사를 누렸다. 세상에는 공짜로 주어지는 것이 참 많다. 신선한 공기도, 한적하고 아늑한 산책길도, 운치있는 경치도,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꽃도. 돈을 주고도 사기 힘들지만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대자연의 풍요를 마치 내 것처럼 누릴 수 있다. 이런 저런 이유로 그 마음 내기가 쉽지 않은 것이 문제일 뿐. 앞으로는 이런 호사를 더 자주, 더 많이 누리면서 살고싶다.
#황산공원 #달이없다 #목련 #벚꽃길 #야밤산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