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매화문화관
구인사를 1박 2일로 다녀온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가장은 또 찾고 있었나 보다. 또 어디로 떠나볼까? 여기저기 물색한 결과 목적지는 광양 매화 문화관과 옥룡사지 동백나무숲으로 정해졌다. 편도 2시간이 넘는 거리지만 이제는 당일로 다녀오는 것에 전혀 부담을 갖지 않는다. 피곤하면 교대로 운전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으니 일단 떠나고 보는 거다. 10년 전 하동 진교에 사는 시누이네와 함께 매화 축제 구경 갔다가 허탕을 친 기억이 있다. 나름 서둘렀음에도 길이 꽉 막혀 진입이 불가했다. 다행히 지금은 축제 기간이 아니다. 대신 만개한 꽃을 보기 힘들다는 아쉬움은 있지만 너무 복잡한 것보다 나으리라.
언제나처럼 달인김밥을 사고, 사과, 오렌지, 용과를 잘라 통에 담았다. 가장이 사랑해마지 않는 오징어포와 소금사탕, 과자 부스러기들을 챙겼다. 보온물병과 스텐컵, 커피믹스와 코코아, 녹차라테 분말은 필수다. 8시까지 어머님, 아버님은 증산역으로 오시기로 했다. 오늘따라 유난히 세차 열망이 강한 가장 덕에 아침부터 몸은 열을 올리고, 어머님, 아버님은 20분을 더 기다리시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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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까지 내린 겨울비로 여기저기 얼룩이 진 애마는 깨끗이 목욕재계를 했다. 상쾌해진 녀석은 다섯 식구를 태우고 섬진강변을 신나게 달린다. 2시간여를 달리니 멀리 산 이마에 '젊은 교육 도시 광양, 아이 양육하기 좋은 광양' 큰 글씨로 쓰여있다. 대부분의 소도시들이 그러하듯 여기도 젊은 층 이탈이 많은 곳임을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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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첫 번째 목적지는 매화문화관! 홍쌍리 청매실 농원과 함께 위치한 곳이다. 홍쌍리라고 해서 마을 이름인 줄 알았더니 매실 명인의 이름이란다. 아침 일찍 도착하면 바로 입구까지 차로 갈 수 있다. 축제기간이 아니기에 내심 기대도 했지만 장거리에서 출발하는 사람은 진작에 마음을 비웠어야 했다. 진입로에서부터 늘어선 경찰들이 막고 서 있다. 대신 섬진강변 너른 터에 무료주차장이 펼쳐져 있으니 감사할 따름이다. 적당한 곳에 주차를 하고 내리니 바람이 매섭다. 그래도 모름지기 3월인데 배신감이 든다. 급하게 집에서 나오며 혹시나 하고 손에 집히는 대로 목도리 2개를 챙긴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트렁크에서 김밥과 보온병, 커피 등을 배낭에 담아 가장의 어깨에 메어 주었다. 매화 농원을 향해 걷는 길이 고달프다. 칼바람 때문이다. 간만의 맑은 날씨에 잔뜩 기대를 했는데 겨울 막바지 독기를 품은 바람이 야속하다.
그런데 오는 길 진영휴게소에 들러 산 파스쿠찌 커피가 화근인 것인가. 가장과 나눠 마시기로 해놓고 혼자 홀짝홀짝 바닥이 보이도록 마셔 버렸다. 그래서인지 급하게 부르는 생리현상! 주위를 두리번거려도 공영 화장실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칼바람도 두렵지 않다. 구세주는 오직 문화관! 방향만 맞다 싶으면 거세게 달렸다. 잰걸음으로 걷다 뛰다, 왼쪽 오른쪽 갈림길에서는 눈치학상 왼쪽임을 직감한다. 갑자기 드러나는 언덕배기! 그래도 달려라 달려. 모퉁이를 돌아서니 문화관 입구가 보인다. 신의 보살핌이 따로 없다. 왜 그곳을 근심을 푸는 곳, 해우소(解憂所)라 하는지 절절히 느낀다. 근심을 풀고 나니 뒤처져 따라오고 있을 딸램과 식구들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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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기다려 식구들과 합류하고 문화관을 둘러본다. 1층은 카페와 매실 제품을 판매하는 곳이고, 2층으로 올라서니 제법 흥미로운 전시들이 있다. 매실의 역사와 유래, 효능, 가공법과 조리 등. 찬찬히 읽어보니 꽤나 유익하다. 매실은 쌀을 주식으로 하는 한국인에게 안성맞춤 건강식품이다. 왜인고 하니, 쌀밥을 먹으면 포도당을 소화, 흡수하는 과정에서 '유산'이라는 인체 노화물질이 나와 세포나 혈관을 굳게 한다. 이때 구연산을 섭취하면 유산 발생을 억제할 뿐만 아니라 발생된 유산을 탄산가스와 물로 분해해 배설을 돕는다. 매실에는 이런 구연산이 풍부한 알칼리 식품이다. 게다가 예로부터 삼독 즉 식독, 혈독, 수독 없앤다고 전해 내려온다. 또한 간 기능 개선, 천식, 폐렴, 편도선, 신장병, 간장병, 당뇨병, 동맥경화, 변비, 구내염 등 많은 질병을 예방, 치료하는 데 효과적이다.
특히나 인상적이었던 건 매실 명인 홍쌍리의 저서들이다. 낮시간에는 고된 노동일에 시달리면서도 밤에는 글을 써서 7권의 저서가 나와 있다. 꼭 읽어 보고 싶다. 홍쌍리 명인의 시 '농원의 추억'은 참으로 진솔하고 정감이 묻어나 아래에 소개를 해본다.
농원의 추억
매화꽃아, 니는 내 딸이제
매실아 니는 내 아들이제
아침 이슬아 니는 내 보석이제
이 애인이 부러우면
꽃의 어매가 되어보소
ㅡ아름다운 농사꾼, 홍쌍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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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한참을 꼼꼼히 전시실을 구경하고 돌아 나오니 뒤뜰로 가는 문이 열려있다. 뒤뜰은 너무나 따뜻하고 포근하다. 인정머리 없던 센바람은 온데간데없고, 따뜻한 해살이 절로 가슴을 펴게 만든다. 여기가 딱 우리를 위한 자리일세. 게다가 사람들도 없다. 매화정원에서의 식사라! 가장의 어깨도 가볍게 할 겸 김밥도 먹고, 보온병에 담긴 따뜻한 물로 커피랑 코코아도 타마시고. 소박하지만 큰 행복! 여든 넘은 어른들을 모시고 이런 식사라니.
좋고 근사한 식사대접해 드리지 못함이 죄송해서
"어머님, 아버님 연세에 이런 경험하시는 분은 없을 거예요."
위로 아닌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
어머님은 연신 "그래, 이런 게 참 좋다. 좋다." 하시고,
아버님은 "여기가 무릉도원이다. 이게 행복이다."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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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점심 만찬을 즐기고 나니 어떻게 알았는지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한다. 우리는 서둘러 나와 문화관 뒤로 홍쌍리 청매실 농원으로 향한다. 구석구석 갈래 길도 여럿이고, 가는 곳마다 매화가 지천이다. 활짝 만개한 매화가 아니라서 더 좋다. 봉우리에서 수줍은 듯 살짝 핀 매화가 더 사랑스럽다. 더 이상 보여줄 것이 없는 만개화보다 더 마음이 간다. 2000독이 넘는다는 청매실 농원의 장독대도 보인다. 하트 매화나무 앞에서 어머님, 아버님은 사랑의 증표도 남기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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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을 가족을 위해 아낌없이 쓰시고도 고운 어머님의 손! 그 위에 당신의 마음을 닮은, 혹한에도 피어난 매화 한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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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님이 인정하신 사진작가, 우리 집 가장은 하체단련 자세로 매화와 사랑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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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바람에 손이 시릴까 딸램 손에 하나뿐인 장갑을 끼워줬다. 딸램은 휴대폰도 춥겠지라며 휴대폰에 양쪽으로 장갑을 끼운다. 어이없음이지만 모른 채 했더니 결국 사달이 났다. 내려와서 보니 장갑 한 짝이 없다. 자기 물건을 소중히 다루지 않고 쉽게 잃어버리고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며 꼭대기까지 끝까지 올라가서 찾아오라는 아빠의 엄명이다. 괜히 나까지 벌서는 기분으로 왔던 길을 다시 올랐지만 찾지 못하고 왔다. 씁쓸한 마무리를 하며 주차장으로 가는 길. 이제 바람을 등지고 걸으니 올 때보다 낫다. 마음의 여유가 생겼음인지 섬진강과 매화의 환상 조화도 보인다. 매화 가지 사이로 멀리 섬진강을 바라보는 딸램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반성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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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변 주차장에 닿으니 그 많던 차들은 대부분 사라지고 넓은 들에 우리 차만 덩그러니 놓여있다. 우리가 정말 긴 시간 꼼꼼히 즐겼나 보다. 두 번째 목적지는 옥룡사지 동백나무숲이다. 길이 막히는 탓인지 거기까지 가는데만 50분, 둘러보는 시간까지 하면 너무 늦어질 것 같아 바로 어머님, 아버님이 계신 부산 가야로 돌려야 했다.
흐드러지게 핀 매화를 보시려면 매화축제기간이 딱 좋겠습니다. 대신 길 막힘은 각오를 해야 합니다. 최대한 이른 시간 6~7시에는 도착하시기를 추천합니다.
광양매화축제
날짜 : 3월 8일~17일
시간 : 7:00~18:00
장소 : 광양시 다압면 매화마을 일원
입장료 : 일반 5000원, 청소년 4000원(동일금액 광양 상품권 제공)
2024년 3월 1일 다녀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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