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모회
아침 6시 기상이다. 다른 날 같으면 5시 10분 전 알람이 울린다. 2년 가까이 새벽루틴이 되고 있는 아특아(아주특별한아침)가 쉬는 날이다. 아침 7시 독서모임이 있는 한 달 두 번 쉬는 토요일이 오늘이다. 참 아쉽게도 참석을 못하고 미리 예정된 큰 아버님 생신 축하 모임에 가기로 했다. 큰아버님과 시부모님, 우리 가족, 우리 집 가장의 사촌이자 큰아버님의 막내아들 가족과 함께 하는 자리다. 아버님과 큰아버님은 고성 바닷가 분들이라 바다 생물들을 무척 좋아하신다. 아버님 생신은 5월에 마산 유명 횟집에서, 8월 생신이신 큰아버님은 미리 당겨서 7월인 오늘 축하해드기로 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고성 하모회가 8월보다는 7월이 맛있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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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 얘기만 나오면 고성 하모회를 침 튀기며 얘기하는 가장의 소원이 이루어지는 날이기도 하다. 가장은 매년 성묘하러 가는 날을 기다린다. 제보다 젯밥에 관심이 많은 분인지라 그날은 하모회 먹을 생각에 소풍을 기다리는 초등학생 마냥 들떠 보인다. 자연산 하모회는 7, 8, 9월에만 나온다고 한다. 그 하모회를 꼭 맛 보여주고 싶은 모양이다. 그렇게 맛있냐고 물으면 쫄깃한 식감과 고소함이 다른 회가 따라올 수 없단다.
비가 올 수도 있으니 안전운전을 위해 넉넉하게 시간을 두고 출발하기로 했다. 부산 가야에 들러서 어머님, 아버님을 모시고 2시간 가까이 달려 고성부산횟집에 도착했다. 30분이나 일찍 도착해서 동네 여기저기를 둘러보는데 가장이 그렇게나 전원생활지로 꿈꾸는 이유를 알겠다. 바다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탁 트인 전망 좋은 곳에는 꽤나 멋진 집들이 이미 자리를 잡고 있다. 원주민은 아닌 듯한 분들이 마당과 텃밭을 가꾸는 모습도 쉽게 눈에 띈다. 대부분 시골은 인구가 준다고 하는데 여기는 해당 사항이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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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점심시간에는 너무 붐빈다 하여 일찌감치 11시로 예약을 해뒀다. 그래서인지 우리가 첫 손님이다. 찌깨다시를 앞에 놓고 대화에만 집중한다. "이것 좀 드세요." 해도 젓가락질이 굼뜨다. '아하, 회를 기다리는구나!' 한사라 가득 담긴 하모회가 나오자 흐뭇한 표정이다. 야채 없이 초고추장에만 살짝 찍어 먹어본다. '난 잘 모르겠다. 그렇게 맛있다고 열변을 토할 맛은 아닌 듯' 그래도 회를 잘 먹지 않는 딸램이 조금이라도 회맛을 보고 시도하는 모습이 기특하다. 어쩌다 씹히는 뼈가 거슬리나 보다. 뒤에 테이블에는 중년 부인 두 분이 앉기도 전에 주문을 한다. 하모회를 먹으러 서울에서 왔다며 주인이 권하는 소자가 아니라 중자를 주문한다. 맛집은 맛집인 모양인데 내 입이 영 고급이 아닌 걸로 결론 내리기로 했다.
가까이 할머니, 할아버지 산소가 편안히 안장되어 있어 다 같이 인사를 드렸다. 밥 먹고 성묘까지 마쳐도 12시가 겨우 지났다. 가장의 사촌이 말한다. "오늘이 다섯 물이라 1시까지 간조네예. 고동하고 청각 주우러 가지예." 빈통까지 챙겨 오셨다. 바위마다 고동이 다닥다닥 붙어있어 금방 반통이 채워진다. 생명을 소중히 하시는 어머님은 청각에만 관심을 보이시는데 청각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효자인 가장은 청각을 제법 찾아내어 비닐봉지에 담았다. 오늘 저녁 찬거리가 될 거라고 한다. 청각은 김장김치에만 들어가는 줄 알고 있는 나로서는 신기할 따름이다.
시간이 지나면 아무리 불렀던 배도 또 고파지기 마련이다. 방파제 옆에 돗자리를 깔고 앉았다. 여름 나들이 단골 메뉴 수박과 시나몬찰케이크를 꺼내놓고 달게 먹는다. 가장이 마을 앞 바닷가를 가리키며 말한다. "저기가 큰아버지 어장막 하던 곳이네예."
아버님이 거드신다.
"형님, 30년 전에는 우리가 여기서 아들, 며느리 하고 손주 데리고 수박 먹고, 떡 먹고 있을 줄 몰랐지요?..." 괜한 우스갯소리를 해보신다.
한 때는 이곳에서 큰 어장막을 운영하시며 호령하셨던 큰아버님의 위풍은 세월 속에 흐려지고 있다. 앞이 선명히 보이지 않는 큰아버님은 그때 그곳을 그윽이 바라보시며 어떤 마음 이실까? 10남매의 막내이신 아버님과 바로 위 형님이신 큰아버님 두 분만 이 세상에 남으셨다. 아픈 형님을 바라보시는 아버님 마음은 또 어떠하실까?
탁월한 택일 능력자, 우리 집 가장 덕분에 장마 한가운데서도 큰 비 없이 왕복 6시간여를 안전 운전하고, 어른들의 마음을 조금은 채워드릴 수 있었던 것 같아 흐뭇하다. 돌아오는 길, 잠시 갓길에 주차하는 중에 턱에 걸려 범퍼가 들뜨는 일이 있었다. 장거리 운전에 이 정도 에피소드야 애교로 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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